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몸은 황지에서 물장구 치고 있으니/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이성복의 '정선'
■ 태어나기 전에도 내 몸이 되기로 예정된 것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도 내 혼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무엇이 어디엔가 흘러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났고 몸과 혼이 한데로 모여들어 혼이 제 몸을 보고 제 몸이 혼을 생각하는 애틋한 생명뭉치가 되었다. 다시 나는 죽어, 몸은 무엇인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고 내 혼은 다시 꿈틀거리며 어디론가 흘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 몸과 내 혼이 만났던 잠시 동안의, 이것만을 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몸이 이동하는 공간과, 몸이 자신의 배터리를 조금씩 방전하는 시간의 정해진 길 위에서, 우린 정말 한 뼘도 비켜설 수 없는 것일까. 그 한 뼘을 비켜서면, 운명 따위에 개의하며 굴종하는 존재로 살지 않았어도 될 일 아닌가. 몸과 마음이 저 가고싶은 길로 원없이 떠돌아 다닌다면, 안개와 바람처럼 스미고 흐르고 사라질 수 있다면, 이 한심하고 처절한, 생의 애착 따위는 없을 것 아닌가. 시인 이성복은 아리랑 위에 얹혀 흐르며 노는 정선 땅이 되어서 호쾌하고 분방한 저 시를 천하에 뱉는다. 사북에는 정선의 혼이 노닐고 있고 황지에는 정선의 몸이 흐르고 있으니 외발가마에 혼을 태우고 아우라지에서 깻묵같이 흩어진 몸을 건져 합체해야 정선 아라리 한바탕 춤과 노래가 되리라. 톱니바퀴 위에서 시간을 밀어온 답답한 내 운명도, 어느 날 저렇게 길을 벗어나 산산이 해체되어 정선처럼 놀 수 있다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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