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수도 고치러 왔던 사내, 최기룡과 이층집 영감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영감에게는 최소한 과실치상죄가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벌건 대낮에 사람을 향해 총질을 했으니 운이 나쁘면 살인미수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엽총이라고는 하나 살상이 가능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영감에게 총을 맞은 최기룡은 허벅지의 부상이 심해 일단 엠불런스에 실려 읍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에게는 아직 충분치는 않았지만 연쇄적으로 동네의 개를 쏘아죽인 혐의가 지워져있었다. 그의 혐의를 입증할 참고인으로 하림은 그날 이후에도 두어번 경찰서에 불려가서 진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적용할 혐의가 없었기 때문에 간단한 심문조서만 받고 그날자로 풀려났다. 하긴 이장이나 송사장이나, 기타 동네 사람들이야 처벌을 받아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일이 묘하게 되느라고 그랬는지 이층집 영감만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된 셈이었다.
경로잔치는 그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끝이 났다. 마치 한차례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 같았다. 살구골 마을은 다시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옛날의 정적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림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오니 그새 소연은 자기 언니 병구완 차 서울 병원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림 역시 이제 자기도 이곳을 떠나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남은 며칠 동안 배문자로부터 받은 숙제나 마칠 요량으로 일체 밖에 나가지 않고 화실에 박혀 지냈다.
그런 어느 날, 화실로 이층집 남경희가 찾아왔다.
“장선생님 계신가요?”
“누구.....?”
하림은 의자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였다. 그녀는 그렇게 불러놓고 잘못 찾아온 사람처럼 문 밖에 고개를 외면한 채 어색하게 서있었다.
“아, 들어오세요.”
하림이 노트북을 닫고 문 쪽으로 가며 말했다. 어색하긴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어놓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소리나지 않게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가 있나 살피듯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화장을 했지만 며칠 새에 오랜 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광대뼈는 도드라져 보였고, 창백한 이마 아래의 눈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바쁜데 방해가 되지 않았나요?”
그녀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아니. 괜찮아요. 앉으세요. 차 한잔 드릴까요?”
하림은 일부러 사무적인 어조로 딱딱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가 의자에 앉을 동안 얼른 차주전자를 렌지 위에 올리고 불을 켰다.
“참,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하림이 생각난 듯이 물었다.
하림의 물음에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검찰청으로 넘어갔어요.”
하고 말했다.
“검찰청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하림은 새삼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돌아보며 되물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