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 김신의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머니'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젖먹이였던 시절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김구는 그의 곁에 없었다. 여장부였던 할머니 곽낙원 여사는 김 전 총장이 중국의 고아원에 여러 번 맡겨졌을 때 번번이 그를 찾아 데려온 인물이다.
김신 전 총장의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는 할머니에 대한 일화가 유독 많다. 백범의 어머니이기도 한 곽낙원 여사는 일본 경찰의 압력과 회유에도 일본 경축일에 홀로 일장기를 달지 않았으며, 임시정부에서는 '호랑이 할머니'로 통했다. 회고록에는 곽낙원 여사가 당시 오십이 넘은 김구 선생에게 회초리를 든 일화도 소개한다.
백범의 강인하고 추상같은 기개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김구 선생이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을 때도 "왜놈 총에 맞아 죽어야지 자기 동포의 총에 맞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무슨 일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동포의 총에 맞았단 말이냐"며 꾸지람한 게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곽낙원 여사는 1939년 4월26일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자신의 손자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이번 회고록에는 그가 태어난 1922년부터 '백범일지' 중국어판 출판기념회가 치러진 1994년까지의 일이 담겨 있다. 김신 전 총장은 백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제6대 공군참모총장(1960)을 지내고, 이후 주 중화민국(대만) 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을 거쳐 현재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백범김구기념관장으로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마저 90세를 넘은 이 시점에서 김신 전 총장은 조심스럽게 우리 현대사의 기억들을 들추어낸다.
"백범 김구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로는 크나큰 자랑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지만, 늘 나와 가족의 어깨 위에 무겁게 드리워진 버거운 숙명이기도 했다. 그것은 언제나 사(私) 보다는 공(公)을 우선시하며 어긋남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지침 그 자체이기도 했거니와, 일거수일투족이 때로는 감시받고 때로는 크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굴레이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비행장 견학을 간 이후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된 사연, 숱한 고난 끝에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학한 일 등 개인적인 추억담 외에도 현대사의 숨 가쁜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으로 가서 F-51기를 인수해온 일, 이승만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백범일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며 찾아온 박정희 당시 장군과의 첫 만남, 본토 수복을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한 대만 등 다양한 현대사의 뒷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다.
책 제목을 '조국의 하늘을 날다'라고 정한 것은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해방된 조국의 하늘에서 태극기를 단 비행기를 몰겠다는 그의 꿈은 곧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산산이 조각났다. '조국의 하늘을 나는 것'은 아직 못 다 이룬 그의 꿈이다. "갖은 고난 속에서 익힌 비행 기술을 동족과 싸우는 데 써야만 했던 이 비극은 나 개인만의 비극은 물론 아니었다. 시대가, 역사가 우리 모두를 그 길로 내몰았다. 이제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주인이 되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슬기롭고, 용기있게 나서야 한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 / 김신 / 돌베개 / 2만2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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