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난생 처음/한 아름 거의 되는 나무를/찍어 눕혔는데/그 줄기 가로타고 땀을 들이며/별 궁리없이/송진 냄새 끈끈한 그루터기의/해돌이를 세었더니/쓰러진 가문비와 그는/ 공교롭게도/동갑이었다/한 나이였다(……)
리진의 '나무를 찍다가' 중에서
■ 인간과 나무의 소통, 혹은 최소한의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감정이입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나무를 도끼로 찍어넘길 때 아무런 고통이나 주저함이 없는 까닭은, 나무가 그저 인간 밖에 있는 수단이요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감정이나 나무의 눈물 따위는 내가 굳이 번역해낼 필요가 없는 게 보통의 실상이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문득 유정(有情)한 존재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 시인은 그 나이테를 세다가 자신과 딱 동갑인 것을 보고는 그만 나무의 생을 직면하고 말았다. 동갑나기 나무에게 도끼를 들이댄 것에 소스라치며, 그가 살아온 시간과 그 기억들을 얼싸안는다. 우리가 어느 술자리 따위에서 낯선 누군가가 동갑인 것을 발견했을 때, 그에게 느꼈던 묘한 동질감과 동기의식 같은 것. 아까까지도 서먹했던 그에게 반말을 하고 어깨를 동무하며 목을 어루만지는 그 기분으로, 터진 살과 흘리는 피, 그리고 거꾸러진 큰 둥치 앞에 앉아 뒤늦게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한다. 리진은 1930년에 북한 함흥에서 태어나 김일성대 영문학과 재학 중에 1951년 모스크바로 유학갔다가 러시아에 눌러앉아 반체제활동을 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소련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평생 무국적자로 지냈으며 2004년경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980년대 말 한국의 문예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고 직접 방한하기도 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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