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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박남준의 '화살나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3초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
화살나무,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박남준의 '화살나무'


■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 사람도 고슴도치처럼 된다. 등에 수많은 화살을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자동차에 올라타거나 울먹이는 표정으로 회전문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화살을 쏘아대면서 스스로의 몸에 꽂힌 화살의 숫자를 세며 자위(自慰)한다. 대개 화살은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가끔 눈에서도 나오고 손가락 끝이나 주먹에서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거대한 화살통이며 자기를 시위처럼 구부려 적의를 뿜어낸다. 인간이야말로 온몸이 화살인 나무이다. 그래도, 화살나무는 아름답다. 지느러미를 단 가지에서 붕어눈 같은 싹눈을 슴벅이는 모습도 아름답고, 초록저고리를 살랑거릴 때의 귀여움과 피처럼 붉은 치마를 갈아입을 때의 농염과 루비 몇 알로 사치를 부릴 때의 중년도 모두 아름답다. 한때는 제 몸이 모두 바람이 나서 어디론가 꽂히고 싶었던 영혼이었고, 또 어느 때는 세상의 화살들이 모두 제 몸에 꽂혀 쩔쩔매던 인생이었다. 날아가고 싶던 화살도,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살도, 돌아보니 하나의 풍경이었으며, 나목 위에 돋고 지던 빛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영혼의 살점 속으로 뼈아픈 화살 한 촉도 미처 꽂지 못한 채, 삶은 화살처럼 지나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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