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도 징용배상 판결에 압력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일본 정부 내에서 동아시아 외교의 우선순위를 한일관계에서 중일관계로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거세지고 있는 양국 간 역사인식 논쟁의 불길에 일본 정부가 기름을 부으면서 한일관계 회복 가능성이 더욱 줄어드는 모습이다.
일본의 대표적 보수지인 요미우리신문은 6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비판, 한국 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등으로 한일관계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본 정부 일각에서 한일관계를 보류하고, 중일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한국 측 주장이 감정에 치우쳐 있어 당분간 냉정한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역사인식 전환 촉구를 일본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비판하고, 외려 '양국관계를 지속하고 싶으면 태도를 바꿔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전날에도 일본 재계 주요 단체인 경제인단체연합회, 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일한경제협회가 한국 법원에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명령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우려와 함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1965년 일한청구권협정에 의해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 또한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기초로 해서 지금까지 일한 경제 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해 왔다"며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 출신 구(舊) 민간인 징용공 등에 관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청구권 문제는 앞으로의 대한 투자나 비즈니스 전개를 하는 데 장애가 되고 더 나아가 일한 양국 간 무역투자 관계가 냉각되는 등 양호한 일한 경제 관계를 훼손할 수 있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둔 상황에서 '경제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처신하라'며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적반하장식 대응에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국내 여론을 고려, 일본 정부의 변화를 견인해야 하는 한편 우방국인 일본과의 관계도 시급히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 재계의 공동성명에 대해 "이런 단체 행동이나 메시지 발신이 오히려 양국 경제관계 발전을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사법절차가 한일 경제관계에 영향을 주더라도 상당히 미미한 부분일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일 언론 간부 세미나' 리셉션에서 "박근혜정부는 출범하기 전부터 한일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난 8개월을 돌아보면 우리의 노력을 무산시키는 (일본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현재로선 터널 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문제의 본질은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이 문제가 정치·외교와 결합할 때 판도라의 상자처럼 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며 "문제의 성격과 심각성을 비춰볼 때 시간이 지나 상처가 깊어지고 방치되면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이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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