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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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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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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틀림없어. 그 작자야!” 하림이 누가 들을 새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와중에 송사장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암튼 이 송아무개, 고향을 위하여 이게 마지막 사업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볼테니까 아무쪼록 여러 고향 어르신들, 많이 많이 도와주시고 지도편달 해주시길 굳게 믿겠습니다.” 그리고나서 큼큼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갑자기 언성을 확 높여서 말했다.


“근데 좋은 일에는 반드시 마가 낀다고 이런 좋은 일에도 방훼꾼이 있더라, 이 말입니다. 아,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 골짜기에 기도원을 짓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사람이 있어요! 말이나 됩니까? 기도원 들어서면 땅값 팍팍 떨어진다는 것 쯤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안 그래요?” 그게 지금 누구를 찌르고 하는 말인지는 거기 있는 사람이면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었다. 훼방꾼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층집 부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다 요즘 우리 살구골을 온통 불안하게 만들어놓은 거 뭣이냐, 개를, 멀쩡한 강아지새끼를 글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천인공노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 강아지 새끼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런 파렴치한 일을 누가 저질렀겠습니까? 외지에서 온 사람이 아니구서 누가 그랬겠어요?”


“쫒아내야 혀! 암, 쫒아내야 하고 말구!” 송사장 말에 윤여사 고모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하림이 서서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른 영감네들은 굿이나 보고 차려놓은 밥이나 먹고 가자는 얼굴들이었다. 고기와 술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개를 쏘아 죽인 놈이 누군들 상관없다는 투였다. 어차피 개발이 되려면 송사장 말대로 기도원 보다야 <차차차 파라다이스>가 백번 더 나을 거라는 계산도 섰을 것이었다. 땅값만 해도 일리가 있었다.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오면 어디서나 그렇듯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게 분명했고, 그러면 가만히 앉아서도 돈방석에 앉을 지 누가 알겠는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 그 말 아니던가.


작당(作黨)이란 그럴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4대강을 파재끼겠다고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부칠 때 ‘환영’이란 플랭카드를 동네 앞에 높이 걸어놓고 두 손 쳐들고 찬성한 사람들도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흐르는 강이야 내 것도 아닌데 죽든 말든 그 덕에 보상금 챙기고, 땅값 올라 부자 되는 꿈을 꿨던 바로 그런 강변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런 꼴상들을 보고 있자니 하림은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음식이고 뭐고, 먹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소연아, 가자. 우리 화실 가서 라면이라 끓여먹자.” 하림이 벌레 씹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소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입술을 비죽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마악 돌아서려는 데 송사장이 마무리 삼아 말했다.


“자아, 술맛 떨어지게시리 더 이상 긴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라고 끝으로 이번에 우리 <차차차 파라다이스> 상무이자 여기 현장 소장이 된,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최기룡 상무를 소개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앞으로 저 대신 젤 많이, 자주 볼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러자 그의 뒤에 서있던 최기룡 상무가 앞으로 나왔다. 하림은 돌아서려다 말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사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 상무라는 사내가 바로 지금까지 송사장 뒤에 조폭 졸개처럼 얌전히 서있던 바로 수도 고치러 왔던 그 사내였기 때문이다. 순간, 사내의 눈과 하림의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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