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킹스 연구소 "美 실업률 높은 이유, 사회적 신뢰 약해져 얌체족 늘어난 탓"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1970년대~1980년대 초반 유럽에서 'Eurosclerosis(유럽 동맥경화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Eurosclerosis는 유럽에 동맥경화증을 뜻하는 sclerosis를 합친 단어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은 유럽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혀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시켰다. 당시 유럽 경제는 힘겹게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고실업에 시달렸고 일자리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은 경제 성장과 함께 일자리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대비되는 상황에 대해 유럽 경제가 동맥경화증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1953년 3월25일 로마조약 체결로 시작된 유럽 통합도 지체되기 시작했다. 유럽 동맥경화증은 유럽 경제 둔화는 물론 유럽 통합의 속도도 느려진 것을 지적한 단어였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벨기에 총리를 지냈던 빌프리드 마르텐은 유럽 동맥경화증이 '유럽통합번안(Single European Act)' 서명이 이뤄지면서 유럽 통합에 다시 박차가 가해졌던 1986년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최근 미국도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1970년대 유럽처럼 동맥경화증(Amerisclerosis)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브루킹스 연구소는 최근 '미국 동맥경화증? 지속적으로 높은 실업률의 수수께끼(Amerisclerosis? The Puzzle of Rising U.S. Unemployment Persistenc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현재 미국 경제가 고용시장 기능 이상 탓에 동맥경화증을 겪었던 1980년대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980년대 초반 이후 강력한 'V'자 형태의 경기 회복이 보이지 않는 대신 실업률 회복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번 침체기(2007년 12월~2009년 6월) 동안 미국의 실업률 회복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번 침체에 앞서 미국은 2001년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침체를 겪은 바 있다.
2001년 침체 당시 침체 진입 직전이었던 2001년 2월 미국의 실업률은 4.2%였고 이후 침체를 겪으며 2003년 6월 6.4%까지 올랐던 실업률은 2006년 10월 4.4%까지 하락하며 6년여 만에 사실상 침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최근 2008년 침체는 달랐다. 침체 진입 직전이었던 2007년 11월 4.7%였던 실업률은 6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7.3%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같은 높은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이유와 관련해 사회의 고령화, 정책 실패 등이 아닌 사회적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는 점이다.
유럽 동맥경화증 시대 당시 유럽연합(EU)은 경제 위기를 범유럽 차원이 아닌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해결하려 했다. 이 때문에 통합 과정에서 낮아진 관세 장벽의 수위가 다시 높아지는 등 막상 위기가 닥치자 그동안 진행됐던 통합에 역행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통합에 대한 신뢰가 약했던 것이다.
보고서는 비슷한 관점에서 미국의 실업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회적 신뢰가 약해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자격이 안 되는데도 다양한 정부 혜택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실업급여의 경우에도 수급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일 하지 않고 정부 보조금만 타내려는 얌체족들이 늘면서 실업자가 많고 실업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저자들은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신뢰 부족만을 이유로 꼽는 것은 충분치 않다며 이에 대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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