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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명이 다섯달 걸려 공주 결혼복 재현..한땀한땀 정성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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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명이 다섯달 걸려 공주 결혼복 재현..한땀한땀 정성의 예술" 한상수 자수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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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품 <11> 자수장 한상수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좌우대칭, 모두 쌍으로 구성된 무늬들이 아래서부터 활활 피어오른다. 주색인 금실과 초록, 주홍, 파랑, 분홍 등 형형색색의 실이 붉은색 천 위에 하나하나 새겨져 모란, 당초, 석류, 봉황, 파도, 복숭아로 태어난다. 양 팔을 벌려 잰 길이가 132cm, 가슴(품) 길이는 41.5m. 이 거대하고도 화려한 옷은 조선조 23대 왕 순조임금의 딸 복온공주가 시집갈 때 입었던 활옷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자수(刺繡)'는 상류층과 종교계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온 공예기술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옷은 물론 가마나 말안장,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수가 장식됐었고, 불교수도 상당히 성행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대여섯명이 다섯달 걸려 공주 결혼복 재현..한땀한땀 정성의 예술" 한상수 장인이 만든 활옷. 100x125cm

4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전수회관 중요무형문화재 80호 한상수(78) 자수장의 공방을 찾았다. 제자 두명과 함께 한씨는 나무틀에 고정된 부드러운 빛깔이 나는 붉은 모보단 위에 한땀한땀 색색의 수를 놓고 있었다. 바로 복온공주의 활옷을 재현하는 중이었다. 이 큰 활옷의 수를 모두 놓으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기간이 걸릴까? 한씨는 "대여섯명이 붙어도 5개월은 걸려야 완성이 가능하다"며 "자수는 공동작업, 모방과 수정이 가능한 예술"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조금은 어두웠다. 60여년을 자수에 몸바쳐오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막막하다는 이야기였다. 한씨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 한때 우리 자수가 일본 등으로 수출된 적이 있었으나 그도 잠시였다. 지금은 싼 인건비를 내세운 중국이나 동남아가 자수상품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전통자수가 가진 우수한 기술력과 세련된 아름다움, 오랜 역사에도 제대로 입지를 갖추지 못한 것은 국내에서의 무관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학교를 세워보고도 싶었고, 학자가 나와 주기를 기대했지만 이제껏 제대로 연구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자수가 예술품으로도 고급 상품으로도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렇지만 자수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상수'라는 이름은 기억한다. 그는 최초의 자수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장인으로, 국내 자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모 격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자수 연구가인 고(故) 조정호 (이화여대 가정과) 교수를 찾아 본격적으로 자수를 배웠다. 또한 전통 자수를 공부하기 위해 옛 자수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고 수집도 했다. 그는 한국 자수기법 60여가지를 체계화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적인 자수공예로 꼽히는 '안주수(安州繡)'기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평안남도 안주는 예부터 명주가 유명하고 자수를 배우는 '남자'들이 양성돼 왔다고 전해진다. 이후 전통자수와 관련한 책을 여럿 발간해왔고, 후학양성도 해왔다. 자수 교육생만 현재까지 수천명에 달할 정도다.


그의 자수작품에는 괘불, 흉배, 활옷, 병풍, 수장(繡欌), 그림 등 다양하다. 이 작품들은 민속박물관, 한상수자수박물관, 사찰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함께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일본의 국보 '천수국수장'을 제자 수백 명과 함께 20여년에 걸친 작업 끝에 복원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한씨는 "전통 자수를 익히는 것은 쉽지 않고, 그만큼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도 값진 것인데 정부나 기업에서 관심을 갖고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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