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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어떤 결혼식 풍경 ①

시계아이콘00분 59초 소요

주말을 확실하게 망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낮 12시쯤 결혼식에 끌려가는 일인데 당할 때마다 끔직하다.


먼저 시간적으로 오전과 오후가 절반으로 딱 갈라져 이도저도 못쓰게 된다. 한반도의 상황에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토요일의 삼팔선' 또는 '일요일의 휴전선'으로 불려도 남녀 주인공이 억울해하지 못할 것이다. 10시나 11시쯤 일어나 화장실에서 길게 '쉬~' 한 뒤 눈곱만 떼고 부엌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들어가 냄비에 라면을 반으로 뚝 잘라 끓여서 팬티 차림으로 느긋하게 면발을 건지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인생의 깊은 맛을 느껴본 분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당연한 거지만 휴일 아점용 라면 맛을 좋게 하려면 반드시 새벽 1시나 2시까지 폭음을 해줘야 한다)

두 번째 폐단은 의상에 대한 것인데 주중에도 좀처럼 메지 않는 넥타이를 목에 둘러야 한다는 것이다.(넥타이가 싫어 자기 결혼식에서도 보타이를 멘 분이라면 십분 이해하리라. 그렇다고 남의 결혼식에 보타이 메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경우에는 와이셔츠도 심각한 문제다. 옷장에 딱 다섯 장의 와이셔츠(옷걸이에 월, 화, 수, 목, 금이라고 적혀있다)만 걸려있기 때문이다.


메뉴도 마땅치 않다. 주중 내내 입맛 까다로운 직장 선배와 자기주장 강한 후배 틈에 끼어 내키지 않는 점심 저녁에 시달렸는데 주말에도 주최 측이 제공하는 밥을 먹어야 한다니, 인생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얼큰한 칼국수나 짬뽕, 또는 돼지 쫄때기 살을 많이 넣고 푹 끓여낸 김치찌개 등을 내놓는 결혼식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도 이따금 예외가 있으니 최근 다녀온 이**군과 김**양의 결혼식이 대표적 케이스다. 일요일 10시쯤 일어나 서둘러 양치질하고 면도하고 샤워까지 대충하고 와이셔츠 입고(월요일 건지 금요일 건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넥타이 메고(결혼 후 이사 몇 차례 하다 보니 보타이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다) 땀 뻘뻘 흘리며(하필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날이었다) 시내 모처로 끌려 나간 것인데….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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