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은 생각하였다. 이 사나이를 말로 만드는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인간들의 사소한 농담까지도 신의 세상에서 얼마나 정밀하고 심각한 인과관계로 풀어내고 있는지 현실로 보여줌으로써,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인간의 가벼움에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신문사 편집기자 마(馬)군이 말이 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밤참을 먹고 있었다. 최근 그는 중요한 지면을 맡아 일하고 있었기에 야근이 잦았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맥주 한잔을 걸친 뒤 퇴근했다. 여느 때처럼 출출함을 느낀 그는 아내를 채근하여 차린 라면을 먹으면서 목 뒤로 송알송알 솟아오르는 땀을 느끼고 있었다. 땀이 흐르는 러닝셔츠의 뒷쪽을 살짝 들어올렸다. 목 뒤가 심각하게 가려워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별 이상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엉덩이 쪽에선 무엇인가 돋아나오는 느낌이었다. 상황은 매우 입체적으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았다. 목 뒤에서 갈기털이 솟아나오고 턱이 길쭉해지더니 얼굴이 말상으로 바뀌어가고 몸이 마구 부풀어 거대한 몸집이 되어갔다. 하나의 변화가 완성되었을 때 그는 의식만 인간인 채 완벽한 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곁에서 같이 라면을 후룩이고 있던 아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외양이 얄궂게 변해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대리인같은 한 사내가 여전히 아내 옆에 앉아서 라면을 후룩이며 먹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급속도로 그에게서 빠져나가 말이 되었다. 대신 자신의 허풍선이 하나가 아내를 안심시키려 자신의 자리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바라보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에 그는 말발굽을 내저어 아내를 일깨우려 했지만 말이 된 자신의 몸은 아내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했고 그녀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말이 된 그가 그녀 곁에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2분 정도였다. 갑자기 그의 몸은 아주 빠른 탈 것 위에 놓인 몸처럼 귀가 멍멍하게 이동하더니 과천 경마장의 어느 말의 몸과 바꿔치기를 하고 있었다.
농담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가 진짜 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어느 날 동료들과 조간신문을 펼쳐보다가 마사회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렸을 뿐이다.
"나도 마사회에 취직했더라면 지금쯤 아무 생각없이 살 수 있을 텐데... "
그는 5년전쯤 자신에게 다가왔던 멋진 기회를 놓친 것을 애석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읽고 있던 그 기사는 마사회 일부 직원들의 비리에 관한 기사였는데 그에게는 그 비리의 비릿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고, 돈냄새 풍기는 생태계에 대한 느닷없는 동경이 스물거리고 있었다. 장기불황으로 빡빡해진 직장생활의 피로감이 그런 식으로 잘못 분출되고 있는 것이리라.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이우철기자가 마군의 말을 되받았다.
"지금도 마사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
"어떻게요? 마사회 수위로?"
마군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자, 이우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아니, 말로 가면 되잖아?"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사소한 농담의 결과가 엄청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농담 속의 언질이 더욱 굳혀진 것은 며칠 후의 술자리였다. 편집부 동료들 간의 술자리였는데 여기에 마침 같은 술집으로 들어온 사진부 몇명이 어울렸다. "오리"라는 별명을 가진 사진부장은 술자리의 뛰어난 분위기메이커였다. 여기서 동료 편집기자 주마등씨는 오리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날짐승과 길짐승이 어울리니 참으로 가축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오리부장은 볼록한 배를 한번 쓰다듬더니 "길짐승은 누군데?"라고 되물었다. "동물적인 후각으로 한번 찾아보시죠." 주씨는 능청을 떨었다. 갑자기 마군의 얼굴이 벌개졌다. 오리부장은 특유의 날렵한 부리를 쳐들어 좌중의 안면을 훑더니 마침 옆에 앉은 마군의 얼굴 쪽으로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바로 너지? 마두(馬頭)." <계속>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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