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후배가 말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욕이 나오더라고요. 깜빡이도 없이 누가 갑자기 끼어들거나, 느닷없이 경적을 눌러 깜짝 놀라게 하면, 나도 몰래 얄궂은 욕설을 중얼거리고 있지 뭐예요. 심지어, 한번은 남자 친구가 옆에 앉았는 데도 똑같은 욕이 튀어나왔어요. 그 친구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니 난감해서 죽겠더라고요." 대체 운전대 앞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첫째, 운전대 앞에는, 믿고 싶지 않지만 '저승사자'가 상주하고 있다. 운수 나쁜 운전은 그분 보러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치명적인 위험 앞에서 목숨을 유지해야 하는 인간은, 긴장을 하게 돼 있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그 긴장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느긋하게 보이는 그 운전자도, 위험이 느껴지면 고감도 안테나가 고도의 긴장을 회복한다. 그 안테나에 위험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잡히면, 인간은 격분하게 된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둘째, 운전대를 잡으면 이성(理性)이 자주 외출 나간다. 이성이란 자기를 살필 수 있고 문제를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지적 역량이다. 운전대 앞에서 인간은 대개, 이성을 동원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없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패닉 상태가 된다. 이성의 스위치가 꺼지는 순간, 눈앞에 닥치는 모든 문제를 잽싸게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이유에 떠넘기게 된다. 대부분의 사고는 일방적인 이유로만 발생하기는 어려운 것인데도, 운전자에게는 상대의 잘못만이 크고 강렬하게 감지된다. 서 있는 전봇대를 박아도, 저게 왜 저기 서 있느냐고 흥분하게 되는 건 이런 까닭이다.
셋째, 운전대 앞에선 '외눈박이 거인'이 존재한다. 운전자는 차를 타는 순간 거인이 된다. 자동차의 거구(巨軀)는 바로 자신의 몸이다. 소형차를 타는 운전자는 상상의 몸이 약간 작게 부풀고, 큰 차를 타는 운전자는 크게 부푸는 차이가 있다. 차와 자신의 동일시야 말로, 운전 심리의 핵심이다. 자신이 거인이다 보니, 그 자동차 사이즈의 힘으로, 상대를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생긴다. 이 거인이 보는 시야는 별로 넓지 않고 그 시선이 그리 차분하지도 않다.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하는 게 전부다. 전체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가 본 것만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외눈박이. 그래서 운전자들은 그토록 쉽게 헐크가 된다.
넷째, '어두운 방' 효과다. 옛사람들은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그때 행동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이른바 신독(愼獨)이다. 홀로 있을 때 누가 보고 있는 것처럼 삼가고 조심하라는 얘기다. 이런 충고가 있었던 걸 보면, 옛사람들도 혼자 있을 때에 어지간히 지저분한 생각이나 행동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지는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운전석에서 욕을 해도 상관없는 건, 대개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백이나 방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은 사회적으로 무해하게 보이지만 이 습관이 남과 함께 탔을 때에도 튀어나온다는 점이 문제다. 어떤 운전자는, 다른 차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입모양이 움직이는 걸 보고 뛰어내려 "너, 나 욕했지?"라고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니, 운전석 욕설이 늘 안전한 것도 아니다.
다섯째, 운전대 앞에서 인간은 정글시대로 잠깐 복원한다. 밀림의 왕자 타잔들이 저마다 운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외제차나 스포츠카 같은 것이 사자나 호랑이쯤 되고, 모닝이나 티코는 어린 양에 가깝다. 버스는 킹콩에 가깝고, 트럭은 티라노사우루스에 가깝다. 택시는 오랜 정글생활로 노회해진 늑대와 여우의 잡종쯤 되지 않을까. 정글에선 여자라고 얌전만 떨고 있어선 안 된다. 모두가 1 대 1이다. 욕설은 그러니까 동물들의 으르릉이며, 포효 같은 것이다. 정글로 돌아간 인간이, 인내심과 자율을 발휘해, 각종 교통규칙을 준수하고 또 위반하여 딱지도 끊기고 하는 것이, 나는 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규칙들을 지켜야 자신도 안전할 수 있다는 수준 높은 사회적 계산이 작동한다는 점이 신통하다. 오직 인간만이, 정글과 문명을 이토록 순식간에 오갈 수 있으리라.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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