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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靑의 '가두리'에 갇힌 政…국정과제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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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2013 세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새누리당)·정(기획재정부)·청(청와대) 협의를 통해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뭇매는 기획재정부만 맞았다.


지난 8월8일 개정안을 공식 발표하기 이전에 세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청와대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7월 중순에 최종안이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기재부가 마련한 개정안에 대해 "당과 잘 협의해 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문제가 없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올해 세법 개정안은 어떻게 마련됐을까. 세법 개정안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보면 당정청이 앞으로 국정과제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늦어진 인사…여론수렴 부족=기재부는 매년 3월이면 정기인사를 통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 3월에 거의 인사가 마무리된다. 매년 이 관례는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늦어지면서 줄줄이 장관 인사가 연기됐다. 기획재정부는 3월에 올해의 주요 계획(세법 개정안, 내년도 예산안, 국가재정운영계획, 공약가계부, 대외여건 전략 등)의 초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곧바로 임명되지 못하고 3월22일 부총리에 취임했다. 더욱이 가장 핵심 부서인 세제실장과 예산실장은 지난 4월17일 자리를 받았다. 예년보다 한 달 이상이나 늦은 인사였다. 기재부 업무공백은 한 달 이상 이어졌다.


◆3월말~4월초 시작된 세법 개정 관련 공청회=3월말에 들어 비과세·감면 제도와 관련된 공청회를 연이어 갖고 중장기 세법정책에 대한 여론 수렴이 계속됐다. 한국조세연구원 등이 중심이 돼 전문가와 여론을 청취하는 자리이다. 세법 개정안 마련을 위해 정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 경제5단체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의 지적사항도 듣는다.


다양한 의견을 취합한 뒤 전체 밑그림을 그린다. 조세특혜제한법상의 비과세·감면 조항에 대해서는 각 부처와 관련된 제도의 현황을 짚어보고 건의와 접수를 받았다. 각 부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관련 제도를 기재부 세제실에서 취합해 평가하고 수정 가능한 부분을 점검한다.


◆5~6월 세법 개정안 초안 작성=이런 작업을 거쳐 세제실에서는 2013 세법 개정안과 관련된 초안을 작성한다. 이때부터는 실무선을 떠나 고위급 인사들이 관여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주도한다. 중간 중간 세제실장은 부총리에게 수시로 보고한다. 보고할 때마다 부총리의 의견과 지시사항을 담아 수정에 재수정을 거듭한다. 보통 세법 개정안 초안을 두고 4~5차례 부총리에 보고하고 수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 세제발전심의위원회(세발심)가 움직인다. 세발심 위원들은 모두 71명으로 학계, 세무사, 회계사, 시민단체, 노동단체를 총망라했다. 6개 분과위로 나눠져 있는데 세법 개정안 초안 마련에 분과위별로 활동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7월초에 부총리에게 최종안이 올라간다. 최종보고서를 검토한 현오석 부총리는 자신의 마지막 의견과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최종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한다.


◆7월 중순 대통령 보고 "당과 잘 협의해달라"=현오석 부총리는 마련된 최종안을 들고 청와대로 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다. 7월 중순이었다.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한 관계자는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당시 대통령은 최종안을 보고 "당과 잘 협의해서 처리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별 다른 지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8월초 새누리당과 협의, 민주당에 설명=대통령 보고까지 끝나고 지시사항을 반영한 2013 세법 개정안은 7월말 내부적으로 확정됐고 공식 발표이전인 8월초 당정협의회를 거쳤다. 정확히 8월5일이었다. 이날 아침 현오석 부총리, 이석준 2차관, 김낙회 세제실장 등이 새누리당으로 향했다.


이어 새누리당과 오전 당정협의회가 끝나고 이날 오후에는 야당에 세법 개정안을 설명하는 자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8월8일, 2013 세법 개정안 공식발표=8월8일 세법 개정안이 공식 발표된다. 기재부는 '경쟁력을 갖춘 공평하고 원칙이 있는 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유득유세(有得有稅)였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 소득공제를 대폭 손질하고 세액공제 추진을 설명했다. 연봉기준 3450만원 이상 소득자는 세금이 오른다고 발표했다. 연봉 7000만원까지 연간 16만원 정도의 세금 인상이었다. 한 달에 1만3000원꼴이다.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전문가들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추진 등)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정부가 증세 없는 세법 개정안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세금이 오르니 당연히 '증세'인데 정부는 "세목신설과 세율 인상이 없으니 증세는 아니다"라고 버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중산층 부담은 느는데 상대적으로 대기업과 부자증세는 뚜렷하지 않아 국민과 정치권의 비난이 시작됐다. 특히 당시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세법 개정안이 중산층에 부담을 주는 것이란 선언을 하고 서명운동은 물론 장외투쟁의 계기로 삼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불거진 촛불운동에도 영향을 끼칠 태세였다.


◆8월12일 청와대의 원점 재검토 지시=사태가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자 8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세법 개정안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라"고 지시한다. 7월 중순 최종안을 보고받았을 때 "당과 잘 협의해 달라"고 말했던 것과 달랐다.


◆'기 죽은' 기재부=원점 재검토는 기재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7월 중순 대통령에 보고했고, 당과 협의도 다 끝마친 사안에 대해 책임은 고스란히 기재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세제실 직원들에게 "기죽지 말라"며 위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기재부는 세법 수정안을 통해 세금 인상선을 기존 3450만원 연봉에서 5500만원으로 올렸다. 결과적으로 세수 4400억원이 줄어들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 4400억원이 날아간 셈이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청와대는 물론 당과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안을 만들 수밖에 없다"며 "기존에 만든 정책이라도 정치적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세법 개정안을 두고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기재부만 뭇매를 맞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2013 세법 개정안은 '경쟁력을 갖춘 공평하고 원칙이 있는 세제'가 목적이었다. 전문가들 대부분도 2013 세법 개정안의 원칙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증세는 없다'는 것과 중산층 부담은 키우면서 정작 대기업과 부자증세는 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뭇매를 맞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기재부 공무원들은 힘이 많이 빠져 있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없는 '가두리 양식장'에 공무원들을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가두리'에 정부를 가둬버리면서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도대체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원마련 대책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근혜정부 스스로 공약했던 국정과제들은 지금 하나, 둘씩 축소되거나 연기될 위기에 처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심지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국정과제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들은 그 책임을 국회로, 심지어 국민에게 전가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원확보가 중요한데 국회에서 관련 법안(FIU, 금융정보분석원)을 축소하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국회를 겨냥했다. 또 일부 청와대 참모진들은 "(박근혜정부가)출범한지 이제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국민들이 너무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 아니냐"며 국민에 화살을 겨누기도 했다.


기재부 세제실이 '기가 죽자' 이제 그 분위기는 고스란히 예산실로 향하고 있다. 7~9월초 까지 예산실은 각 부처의 예산운용계획을 넘겨받아 '2104 나라살림' 가계부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두고 심의가 한창인 예산실은 지금 초죽음 상태이다. 밤샘작업은 물론이고 각 부처가 올린 국정과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재원 마련의 해법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가두리 재원마련'에서 허덕이고 있는 정부를 구제할 수 있는 곳은 분명해 보인다. 세법 개정안 마련에서 함께 협의했으면서도 뭇매를 피했던 당(새누리당)·청(청와대)이 이제 나서야 한다. 정부를 탓하지만 말고 당과 청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를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내년도 나라살림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증세 없는 가두리'에서 벗어나 국민적 대타협 시대로 가는 길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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