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환란과 금융위기는 아픈 경험이지만, 국민들의 경제 상식도 넓혀놨어요. 전문가들이나 쓰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 같은 용어를 이젠 일반 국민들도 흔히 사용합니다. 국제금융센터가 더 공부하고, 더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명동 은행회관 3층에 위치한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의 사무실은 무척 더웠다. 정부가 권장한 실내온도를 정확하게 지킨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를 떠난 뒤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꼬장꼬장한 '공무원 마인드'는 그대로였다.
취임한지 한 달여. 국제금융의 백전노장은 학구열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책상엔 분야별 보고서 초안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모두 김 원장의 '데스킹'을 기다리는 초고들이다.
"센터의 제1 설립 원칙은 외환·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위기대응체제를 강화해야 해요. 지름길은 없습니다. 모니터링을 강화해 조기경보기능, 즉 경제의 사이렌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센터의 임무에요."
철벽수비를 강조하는 김 원장 취임 뒤 센터 연구원들은 고달퍼졌다. 미국의 출구전략 움직임, 일본의 엔저공세 속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중국의 정책 변화까지 읽어야 한다는 김 원장의 주문이 있었다.
40명의 연구원들은 요사이 지역·분야·이슈별 보고서를 말 그대로 쏟아내고 있다. 실시간 이슈를 챙겨 날마다 '짧고 굵은' 보고서를 서비스한다. 문자를 통해 주요 정보를 알려주는 SNS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센터의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책 이슈를 챙기고, 기업과 금융기관도 이걸 통해 세계 시장의 흐름을 읽는다. 센터가 피곤할 수록 경제는 든든해진다.
김 원장은 국제금융시장 앞에선 "쫄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시절 외환제도·외화자금·국제금융과장을 거쳐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을 지낸 베테랑이다. 자본유출입 규제의 상징이 된 이른바 '거시건전성 3종 세트'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재정부 시절 '대인배'로 통했던 김 원장은 그러나 "대범한 공무원은 없다"고 정색을 한다. 대인배로 보이는 자신감 뒤엔 엄청난 양의 페이퍼 스터디와 물 샐틈 없는 모니터링이 있었다는 후일담을 털어놨다.
그는 "연평도 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이 국제금융시장을 발칵 뒤집어놓는 것처럼 국제금융가에서는 비단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이슈가 튀어나와 상승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시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센터가 시장 앞에 늘 겸손한 자세로, 성실하고 정직한 목격자가 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센터의 보고서는 신문기사와 많이 닮아있다. 전문적인 분석과 함께 적시성도 담아야 한다. 시장에 반영된 재료는 이미 뉴스가 아니다. 센터엔 그래서 밤이 없다. 경제 모니터링 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박사학위 소유자에 연연하지 않고 인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그래서다. 센터에는 유독 투자은행(IB)이나 펀드매니저 출신 '선수'들이 많다.
김 원장은 "요즘은 일반 개미 투자자들도 센터에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 경제 변수가 미칠 영향을 묻는다"면서 "기자들이 취재하듯 '간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 '다우지수가 폭락했는데 오늘 아시아 증시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느냐' 등을 콕 짚어 묻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절 김 원장은 임기 중 한 번 겪어볼까 말까한 사건들을 잇따라 경험했다. 정책 입안자에서 조력자로 옮겨간 자리가 어색하진 않을까.
김 원장은 "어깨에 놓인 짐이 다소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청사로 출근하던 시절 못지 않다"고 했다. 돌아보면 자산이지만, 김 원장은 현직 시절 간담이 서늘한 순간들을 여러번 만났다. 그는 그 시절을 "참 외롭고 고독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0년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에 따른 거래 중단 사태, 그리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굵직한 사건의 최전방에는 늘 김 원장이 있었다.
노장이 바라보는 요사이 국제금융가는 사춘기다. 좋다 혹은 나쁘다로 규정할 수 없는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굴러가는 중이다. 김 원장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관리 가능한 범위 내의 파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아울러 "주요국의 채권 금리가 올라 기업들의 외화 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외국인의 자금 유출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건실한 거시지표와 양호한 국가신용등급, 충분한 외환보유고 등 탄탄한 경제 체력을 고려하면,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이 급격한 자본 유출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원장이 가장 눈여겨 보는 변수는 '중국'이다. 김 원장은 "미국의 단계적인 양적완화 중단과 아베노믹스의 향방에 국제금융가의 시선이 쏠려 있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게 바로 중국의 동향"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우리 경제는 앓아눕는다.
김 원장은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이 7.5%에 그치는 등 내수 부진에 따라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는 데에 주목했다. 그는 이어 "중국 정부의 구체적인 경기부양책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소득 격차는 벌어지고,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면서 "그림자 금융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중국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도 주의깊게 살펴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세계 시장의 변수로는 "미국의 출구전략 실패와 유로존의 재정위기 재연 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더불어 "유혈사태로 번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세계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대담=이의철 금융부장
정리=박연미 기자 change@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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