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 측이 모두 국회 국정조사 일정을 이유로 재판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정치적 비난 여론 무마를 더 신경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김용판 전 청장 측 변호인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미리 법정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여론의 역효과가 따를 것”이라며 다음 준비기일을 다음달 20일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청장 측이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국회 국정조사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기일변경만 요청하자 검찰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기소된 지 한 달이 넘었고 이미 1차례 기일 연기를 한 바 있다. 증거에 대한 기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여론의 역효과를 언급하며 재판을 이유 없이 끊은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재판 진행이 우선이고 국정조사로 여론의 영향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건데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면서 “소정의 절차는 크게 상관이 없다. 재판부가 충분히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국정조사 기간을 이유로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순 없다. 적어도 8월말~9월초에 재판을 진행해야 하고 이 전에 증인신청 등의 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변호인의 취지는 이해한다. 이 사건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면서 “재판부도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진행하도록 노력할 테니 검사와 변호인도 이 법정에서만큼은 균형을 잃은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국정조사와 사법절차는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 측에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과 증거 동의 여부를 일주일 이내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했고 다음 준비 기일은 다음달 14일 오전 11시로 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아무 의견도 밝히지 않은 김 전 청장 측을 향해 “어느 부분을 다툴 것인지 쟁점을 정리해 와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김 전 청장을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청장은 정상적인 공보활동을 빙자해 특정 후보자에 유리하게 왜곡된 중간수사발표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16일 “대선 후보 관련 비방·지지 게시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이례적인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서울경찰청은 증거분석 과정에서 이미 확보한 단서조차 실제 수사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에 넘겨주기를 거부하며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취임 이래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 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 공간에 특정 정당 및 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도록 수시로 불법적인 지시를 반복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원 전 원장에 대한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2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양성희 기자 s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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