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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초대 대통령 이승만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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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초대 대통령 이승만 숨지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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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오늘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사망한 날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건국의 아버지',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죠.


한일 합방과 독립, 대한민국 건국, 6.25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그의 삶의 발자취는 많은 평가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승만은 1898년 정부전복 혐의로 투옥됐습니다. 탈옥을 모의하다 붙들려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감형을 받았고, 민영환의 노력으로 7년만에 석방된 뒤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한일합방이 되자 귀국해 YMCA를 중심으로 반일 활동하다 체포되었으나 미국 선교사의 주선으로 석방되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로 가 현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지만 외교적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무장 투쟁 노선을 추진했던 박용만 등과 갈등을 빚습니다. 그의 그같은 독립운동 노선은 1921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으로부터 불신임 결의를 받기도 하죠.


해방후 남한만의 선거에서 그는 초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이승만은 반공(反共)과 배일(排日)을 강력 주창했지만 정작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는 친일세력 척결에 미온적 이었으며 오히려 그들을 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와 문화에 큰 흐름을 결정했습니다.


6.25 중인 1952년에는 계엄령까지 선포하고 반대파 국회의원을 감금까지 하면서 대통령에 재선되고, 1954년에는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을 발의, 국회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되었으나 유명한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변칙 논리로 번복, 통과시킴으로써 3선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결국 1960년 3.15선거에서는 전국적이고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해 4선에 당선했으나 4.19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있다가 현지에서 사망합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오랜 옥살이를 하는 등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쳤으나 그의 인생 후반부는 많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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