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로 단박에 인기 배우 반열에 올라선 최진혁. 지금 그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얼떨떨하다. 데뷔 7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면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분명한 건, '구가의 서'가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확실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는 것이다.
드라마 종영 후 최진혁은 수많은 매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갑작스런 인기에 탈이라도 난 것일까. 식중독에 걸렸다는 최진혁은 인터뷰를 중단하고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다행히 기자와 만난 최진혁은 건강해 보였다. 다양한 포즈와 함께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 최진혁과 만나 본격적으로 '구가의 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구월령 덕에 자신감 충만
최진혁이 연기한 구월령은 지리산을 수호하는 신수(神獸) 구미호이다. 남자 구미호.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 숱하게 등장했던 구미호들은 대부분 여자였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는 우리에게 '여자'라는 강한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최진혁은 처음 남자 구미호를 연기하는데 온전히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누구를 모티브로 삼을만한 캐릭터가 없었어요. 덕분에 고생도 많이 했죠.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그림을 그려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숲에 가보고, '내가 지리산을 지키는 주인이다'라는 상상을 많이 했죠. 현장에서 쉴 때도 전경들을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구가의 서' 1, 2회가 나간 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배우 이연희와 그토록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최진혁에게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재출연을 요구했다. 이후 천년 악귀가 돼 나타난 최진혁은 극의 중심을 이끄는 주요 역할로 발돋움했다. '구가의 서'에서 그가 연기한 구월령이라는 캐릭터는 배우 최진혁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소중한 배역이다.
"저는 그동안 자신감이 없었어요. 항상 뭔가에 쫓겼고,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시고, 또 얘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배우로서 굉장히 좋게 작용한 것 같아요. 자신감이 생긴거죠. '내가 배우로서 이런 장점이 있었구나'라는 걸 처음 생각해 봤어요. 그동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많이 앞섰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는 점이 놀라웠죠."
◆ 이연희 그리고 윤세아
이번 드라마에서 최진혁과 러브라인을 그린 서화 역에는 배우 이연희와 윤세아가 열연을 펼쳤다. 이연희는 극 초반 최진혁과 풋풋한 사랑을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극 후반붕에 등장한 윤세아는 가슴 깊이 묻어 둔 상처를 끄집어 내야 하는 처절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두 사람에게 하나의 감정을 느껴야했던 최진혁에게도 나름 고충은 있었다.
"(윤)세아 누나와는 전혀 친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했죠. 본 적도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거든요. 과연 내가 1회 때 느꼈던 서화와의 아련한 감정을 살려낼 수 있을까 걱정되더군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급하게 친해졋어요. 누나가 워낙 성격이 좋으시니까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감정 몰입도 잘되고 굉장히 좋았어요.(웃음)"
서화는 극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랑하는 구월령을 되돌려 놓는다. 구월령 역시 잠든 서화의 곁에 영원히 머무는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죽음으로 못다 이룬 사랑의 인연을 이어갔다. 최진혁은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서화가 자결하는 장면이 어려웠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연희에서 세아 누나로 바뀌면서, 다른 인물을 놓고 연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느껴졌어요. 과연 감정이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요. 보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한 사람이지만, 저에게는 아니잖아요. 일관된 느낌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똑같아 보였어요. 그 순간 세아 누나가 서화로 보였고 저 역시 역에 몰입할 수 있었죠."
◆ 가수하러 왔다가 배우 데뷔
최진혁은 목포에서 밴드 음악을 배우기 위해 상경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직접 OST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는 목포에서 가수를 한다거나 배우를 하는 모습들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남들 앞에서 울고 웃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면 못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서울에 와서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연기 해보는 게 어떻겠니?"였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연기를 권하셨어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저는 전혀 생각을 못했죠. 그러다 어느 날 박경림 누나가 저에게 연기를 제안했죠. 같은 소속사였어요. 계속 저에게 연기를 하라고 얘기하셨고, 결국 그게 제가 배우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여기까지 온 것도 경림 누나 덕이 커요. 저에게 처음 연기의 문을 열어 주신거죠."
'구가의 서'를 마친 최진혁은 SBS 새 수목드라마 '상속자들'에 캐스팅돼 활동을 이어간다. 또 영화 출연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오는 9월에는 일본에서 팬미팅을 연다. 그야말로 톱스타의 행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의 인기가 믿기지 않는다. 그저 신기하기까지 하다.
"가끔 보면 제가 이렇게 배우라는 이름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불과 10년 전만해도 '나는 커서 뭐가 될까' 그랬는데, 이런 일을 하고 있네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남들 앞에서 울고 웃는 연기를 어떻게 할까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잖아요. 진짜 삶이란 게 다이내믹한 것 같아요."
장영준 기자 star1@
사진=정준영 기자 j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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