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눌러 죽이는 대신/탁자 밑에 줄줄이 기어가는 개미떼를 향하여/진공청소기를 대고 스위치를 켰다//아우슈비츠에서도 그랬을 것이다/다만 스위치만 눌렀을 뿐이었을 것이다/가자지구를 향하여/미사일을 날린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눈 질끈 감을 필요도 없이/더구나 아주 멀리서,(.....)아무 고통도 없이, 있다면/다만 스위치 탓이라고/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고/태연하게
■ 기자 입문을 위한 강의를 할 때, 가장 힘주어 역설했던 것은 '입장과 관점'이었다. 객관적인 내용이다, 혹은 이건 팩트(fact)다, 라고 말할 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살피라고 주문한다. 같은 사실일지라도 입장에 따라 그리고 관점에 따라 그것이 전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두 개의 입장이 대치하고 있을 때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사건이나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어느 진지에서 보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을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적은 멀리 있고 아군은 가까이 있다. 적의 고통은 보이지 않고 아군의 참상은 리얼하게 보인다. 시야에서 멀리 있는 고통에 대해 감정이입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스위치를 누르는 미군일 뿐, 아이의 주검을 안고 통곡하는 이라크 어머니가 아니었다. 시인은, 진공청소기로 개미떼를 죽이면서 통증을 환기한다. 저렇게 죽여도 되는가. 태연한 척 하지만, 행간에서 진저리를 치고 있는, 감정이입을 느낀다. 세상의 참극은 무심한 스위치가 빚지 않았던가. 쉬운 언어들 속에 들어 있는 가시 돋친 질문. 문득 찔린 듯 아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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