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법정의 결정이 있어아 배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시죠."
"재고분만 믿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해운사라도 알아보겠습니다."
STX팬오션이 법정관리가 밥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STX팬오션이 전담해 온 팜유, 밀가루, 철강 등 각종 원자재들의 수송 길이 막히면서 물가 인상에 단초가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물류 동맥경화가 지속될 경우 올 추석께에는 물가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6일 현재 미국 등 주요 원자재 산지에 인접한 바다에 떠 있는 STX팬오션 소속 선박은 총 20여척으로 추산된다.
선박이 항구를 앞에 두고도 접안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금 결제가 동결됐기 때문이다. 지난 달 7일 STX팬오션의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STX팬오션의 부채 및 자금 결제가 법원의 허락 하에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이 선박 운영에 필요한 비용 결제를 제때 하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STX팬오션 소속 팜유 운송선박(베지오일선) 5척(2만t급)도 이같은 이유로 항구에 접안도 못한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팜유는 라면, 식용유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자재로, STX팬오션의 그동안 국내 생산량의 대부분을 운송해 왔다.
STX팬오션 관계자는 "팜유 공급지인 미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배가 도착해도 항구로 들어가지 못하니까 공급이 불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라면이나 식용유를 만드는 원재료가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식료품업계다. 재고분이 점차 바닥에 가까워지는데 원자재 공급이 안되니 발만 구르고 있는 형국이다. 급기야 농심은 이같은 상황이 계속 되면서 다른 해운사를 통해 팜유를 공급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2개월 가량 비축분을 갖고 있어 견딜 수 있는 상태"라면서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베지오일선의 경우 국내 중소 해운업체가 1척만을 보유하고 있어, 수요공급에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식품업계의 설명이다.
제분업계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과 호주 등으로부터 최근 들어올 예정이었던 원맥 16만t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한국제분협회 관계자는 "업체 마다 재고분으로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지속되면 다음 달 초부터는 생산중단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STX의 자금난이 국민의 식탁까지 침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같은 원자재 공급 중단이 향후 물가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수요는 계속 있지만 공급이 중단되면 가격이 오른다는 간단한 논리다.
특히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후 벌크선 운임지수(BDI)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 해운사를 찾아도 운임 상승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STX팬오션의 법정관리가 개시되기 전인 지난달 5일 801포인트였던 BDI지수는 2일 현재 1170포인트까지 올랐다. 한달새 369포인트나 상승했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BDI지수가 상승한 것은 벌크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화주에 따라 운임이 다르지만 최근 한달간 운임단가가 크게 올랐다"며 "현재의 운임단가가 추석 물가에 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준호 기자 rep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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