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에서 사이코패스 악역 맡아.."다음엔 착한 역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아유, 배고파. 짜장면이라도 시켜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비구름이 하늘을 잔뜩 뒤덮은 어느 흐리고 습한 여름날, 삼청동 카페에 산울림 김창완이 나타났다. 주말에 있을 공연연습을 하다 왔다며 의자에 앉자마자 배고프다고 타령을 불러댄다.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그는 TV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그 모습이었고, 카페에 있는 기타를 꺼내들어 한 곡 뽑을 때는 라디오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그 목소리였다. 그와의 인터뷰는 그 어느 인터뷰보다 엉뚱하고, 유쾌했으며, 기묘하기까지 했다.
20일 개봉한 영화 '닥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김창완은 장식용으로 카페 한 구석에 세워져있던 기타를 가져오더니 튜닝을 시작한다. "아, 이거 주인이 너무 신경을 안써서 기타에서 거문고 소리가 나네. 쯧쯧."
아이폰을 꺼내들고 본격적으로 줄을 튕기며 조율을 시작한다. 그 사이를 틈타 기자가 질문한다. 이번 영화에서 김창완은 사이코패스 성형외과 '최인범' 역을 맡았다. 극악무도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 완성된 걸 보고 욕 많이 먹겠다 싶었다. '너 맨날 착한 척, 착한 역만 하더니 결국은 마각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반응이 나올 거 같다. '사람은 다 똑같구나, 세상에 착한 사람이 어딨겠어' 하는 반응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 아닌가. 내 안의 괴물,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조종하는 악, 달아날 수 없는 공포, 이런 것들을 영화는 담아낼 수 있는 거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내팽겨쳤다고 한다. 그러다 "남이 고생해서 만든 시나리오를 고작 5분만에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다시 시나리오를 집어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인물하고 하나가 된다는 경험을 잘 못했다. 가방 하나 들려주면 회사원이 됐고, 가운 입혀주면 의사가 됐다. 실제로 그 인물이 돼 본 거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하필이면 이런 나쁜 인물에 동화가 돼서 좀...(웃음). 그렇지만 내가 '최인범'화가 됐다기보다는 그 캐릭터가 '김창완'화됐다. 이제는 가만히 웃고만 있어도 상대방이 기분나쁘다 그러더라."
-혼자서 극을 이끌어 간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었나?
"처음에는 없었는데, 생겨버렸다. 제기랄."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실 시나리오는 고르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웬만하면 하자는 주의다. '좋은 시나리오를 하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다음에는 어떤 시나리오를 하게 될까'하는 기대감이 더 크다."
-캐릭터가 강하고 센 역과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역 중 어떤 것이 더 소화하기 힘든가?
"그동안에 착한 역할 참 많이 했다. 연기를 1985년부터 했는데 3분의 2는 착한 시절이었고, 3분의 1은 나쁜 시절이었다. 근데 이번에 '닥터' 찍고 나니까 착한 역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 이제는 진짜 착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화의 주제가 '음악'으로 넘어갔다.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가 좋냐는 질문처럼 가수와 배우에 대해 물었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가수'라는 답이 나온다.
"가수가 좋다. 가수가 행복하다. 노래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연기를 하고, 방송을 하고, 책을 쓰거나 하면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는 있어도 충족감이 없다. 음악을 하고 있으면 자족적인, 그러니까 그것 자체로 가득찬 면이 있다. 집에 아무도 없고 시간이 있으면 (기타를 치면서) 이렇게 코드만 바꿔서 똑같은 멜로디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칠 수 있다. 하루종일을 이렇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있다."
그러더니 계속해서 기타를 튕긴다. 신념을 묻는 질문에는 "거대한 꿈이나 바람이 있는 건 아닌데, 다만 '음악을 좀 알아간다', '연기가 좀 된다'하는 생각이 스스로 들면 그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음악이든 연기든 '미로'다. 여긴가 보다 싶어서 가봐도 막혀있지 않나.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도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중들이 볼 때는 치열한 노력파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천재형 같은 인상인데?
"(박장대소하며) 아이고, 천재라고 하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즐기는 건 맞다. (재차 물어보자 쑥스러운듯) 아이, 그거보다는 내가 노래 하나 들려줄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산울림의 '내사랑'이다. "언제나 예쁜 내 사랑은 이밤도 내 곁에 있어요. 별처럼 꽃처럼 아름다운 내 꿈 피어나요. 사랑노래 불러 주세요. 나비들은 춤을 추고요. 언제나 귀여운 그대 모습, 우린 행복해요."
작은 박수 소리가 카페 안을 울린다. 내친 김에 한 곡 더 뽑는다. 이번 곡은 산울림의 '식어버린 차'.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을 왜 난 기다리나. 식어버린 차를 마시면서 쓰디 쓰게 울고 전기줄에 한마리 새 앉아 있으니 내 모습 같아보여..."
노래가 끝나자 마침 카페 문을 열고 영화 '닥터'의 김성홍 감독이 등장한다.
"아, 열받아. 영화가 퐁당퐁당 상영하게 됐어."
"퐁당퐁당? 그게 뭔데?"
"왜, 교차상영이라고, 오전이랑 밤 늦게만 상영하는거 있잖아."
김 감독이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자 김창완이 눈을 찡긋하며 짓궂게 말한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난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러면서 스태프들이 따로 준비해둔 맥주를 사람들에게 따라주며 즐거워한다. 아이같은 순수함과 예민한 그 감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훈련이다. 모든 것에 반응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반응할 수 없다. 사물에 다가가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그게 기타일 수도 있고, 냉수 한 잔일 수도 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는지 슬픈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작은 새 사진을 한 장 보여준다. "며칠 전에 방송국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내 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이 새가 밤낮으로 울어대는데, 이름을 '홀딱벗고새'라고 지어줬다. 근데 저녁에 와서 보니 아직도 그 새가 거기에 있더라. 순간 철렁했다. 이 새가 갇혔구나 싶어서. 그 길로 얘를 날려 보내줬다. 근데 이후로 소식이 없다. 밤낮없이 소리 내 우는 새인데. 어디 가서 죽은 건 아닌지..."
'온 산에 홀딱벗고새가 너하나였다 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지. 홀딱벗고 새야 미안해'하면서 새에게 바치는 시를 낭송한다. "이렇게 아름답고도 사소한 것들에 감흥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다시 기타를 잡은 김창완은 마지막 노래를 들려줬다. 김창완 1집에 있는 '내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란 곡이다. 유서와 같은 곡이라고도 했다. "내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작은 장미 꽃송이와 함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릇 소리는 초인종으로 달아주오. 천정엔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람 추억을 담은 단지도 예쁜 것으로 해주오..."
조민서 기자 summer@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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