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에 갤S4 들고 방문해 시간 쪼개 일정 소화…美서 곤경 빠진 페북, 분위기 반전 카드 될까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각본 삼성전자, 주연 저커버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1박2일 방한은 삼성전자가 기획하고 저커버그가 전면에 나선 한 편의 비즈니스 드라마다. 저커버그를 초청한 삼성전자는 혁신 기업과의 모바일 협력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고, 저커버그는 페이스북폰 출시 실패 등 최근의 악재를 씻어주는 유명세를 달콤하게 즐겼다. 삼성 관계자는 "페이스북측과 저커버그 CEO의 방한 일정을 조율할 때부터 청와대, 삼성전자측 면담자 일정을 모두 고려해 계획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첫 방한인데도 페이스북 한국 지사를 찾지 않았다. 래리 페이지 구글 CEO가 삼성전자와의 면담 후 구글 지사를 찾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저커버그는 이번 방한에서 삼성전자와의 협력에 올인한 것이다.
저커버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오전 면담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후 1시42분께. 청와대 방문시 입었던 검은색 정장 대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후드티, 청바지, 운동화 차림에 얼굴에는 환한 미소, 왼손에는 갤럭시S4를 들고서였다.
이날 저커버그는 삼성전자 최고위층과 7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을 가졌다. 지난 4월 방한한 래리 페이지 구글 CEO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삼성전자측과 각각 2시간, 2시간40분 동안 면담을 가진 것을 고려하면 3배 가량 긴 시간이다. 삼성 관계자는 "저커버그 CEO가 시간을 잘게 쪼개 여러 사람을 만났다"고 귀띔했다.
마라톤 회담은 양측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참석차 면면을 보면 모바일 분야에서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신종균 삼성전자 IM담당(사장)을 중심으로 이돈주 사장, 홍원표 사장, 이영희 부사장, 윤한길 전무 등 무선사업부 임원진이 배석했다. 페이스북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사업 제휴, 인수합병 등을 책임지는 댄 로즈 부사장 등이 동행했다.
업계는 삼성전자와 페이스북이 갤럭시와 아티브 브랜드의 스마트폰·태블릿PC 분야와 타이젠 등 모바일 운영체제(OS)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판 페이스북폰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오후 8시40분께 회담을 마친 저커버그와 신종균 사장이 삼성전자 사옥 로비에 모습을 드러내자 몇시간째 진을 치고 기다리던 취재진 사이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로비를 지나 사옥을 빠져나가는 내내 두 사람은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신 사장은 저커버그를 배웅한 후 "인상이 참 좋더라. 정보기술(IT) 산업 전반에 걸쳐 논의했다"며 협상이 만족스러웠음을 내비쳤다.
저커버그와의 면담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혁신 기업과 연대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애플과 특허전을 치르는 등 치열한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페이스북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끌어안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모바일에 주력하면서 양측의 협력은 다양한 부문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페이스북이 애플 대신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것은 상징성이 큰 사건"이라고 말했다.
저커버그도 이번 방한을 통해 최근의 악재에서 벗어나는 등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가 통화 기록에 이어 인터넷에서도 무차별적으로 미국인들의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보 제공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 4월 HTC와 손잡고 야심차게 출시한 페이스북폰 퍼스트는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지난해 5월 기업공개(IPO) 공모가 38달러였던 페이스북 주가는 1년 넘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커버그의 방한은 최근의 악재를 떨쳐내고 도약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준 삼성전자에 대해 저커버그도 강한 연대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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