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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6장 봄비 내리는 아침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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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6장 봄비 내리는 아침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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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 같네요, 하는 순간 하림은 소연의 눈빛을 봤다. 어쩌면 그 순간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시의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앞으로 정말 시를 쓰게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런 시심이 싹 터 그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일포스티노의 마지막 자막. 천천히 네루다의 시 한편이 떠오른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 였는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것이 찾아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림이 말했다.
“마리오는 기다리고 있었지. 멀리 창밖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마리오에겐 그 기다림 자체가 시였을지 몰라. 기다림 속엔 슬픔도 있고, 설레임도 있고, 외로움도 있잖아. 지나간 시간도 있고, 다가올 시간도 있고..... 시를 쓰지 않았다 해도 그는 이미 시인이었을 거야”

소연이 말했다.
“내가 그 나이 때 시가 날 찾아왔다, 그 구절이 좋네요.”
“응. 나도.... 시가 나를 찾아왔다.... 멋있지?”
“그런다고 누구에게나 찾아와 주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그것도 절실히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와 주겠지.”
하림이 말했다.


“근데 난 기다릴 것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어쩌죠?”
소연이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기다림이 없다는 말은 사랑이 없다는 말과도 같애. 마리오에겐 베아트리체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 어쩌면 네루다는 단지 그의 사랑과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몰라.
“근데 난 무엇을 기다려야 하죠? 마리오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하림 오빠처럼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소연이 갑자기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 너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아뇨. 진짜라니까요.”
소연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거짓말 마. 남자 친구 있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치이. 그걸 믿어요?”
소연이 입술을 쑥 내어밀며 말했다.
“사실 난 바라지도 않아요. 못 생겼구, 대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그런 나 같은 아이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겠어요?”
소연이 다시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소연이 어때서....?”
하림이 그러지 말라고 공연히 말타박을 놓았다. 그리고보면 사람마다 깊은 곳엔 상처가 있고 콤플렉스가 있는 법이다. 노랑머리 젊은 그녀에게도 그게 왜 없을까. 더구나 일찍이 엄마가 돌아가셔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엔 남모를 상처가 시퍼렇게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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