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공시 기업 가운데 16개 거래정지
횡령·배임에 상폐까지…소액주주 '눈물'
몇천억대 횡령 발생해도 최대 처벌 기준은 '300억'
2009년 이후 양형 기준 제자리걸음
'주권매매거래정지' 일반투자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한국거래소의 공시는 거래정지다. 기업 경영진이 고소·고발 또는 검찰의 공소 제기로 횡령 및 배임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종목의 거래는 곧바로 중단되고,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한다. 주식거래를 멈춰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란 의미다. 하지만 기업 내부를 향한 범죄, 횡령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1일 아시아경제가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실을 통해 전달받은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본시장에서 횡령 및 배임이 발생했다고 공시한 기업은 29개사, 4025억원이었다.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시장에서 각각 1481억원, 2303억원, 241억원의 횡령 및 배임이 발생했다. 29개 상장사 가운데 16개는 현재 주식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상장사 횡령·배임 사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횡령 및 배임 발생액은 2022년 3471억원, 2023년 4069억원으로 최근 3년간 누적액이 1조1500억원이 넘는다. 올해 1월1일부터 2월11일까지의 횡령 및 배임 발생액은 637억원으로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이 될 수 있다. 횡령 및 배임 혐의 관련 공시 건수도 2022년 23건에서 2023년 41건, 지난해 49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상장사들은 엄청난 횡령 액수를 공시하기도 했다. 코넥스 상장사인 셀젠텍은 지난해 7월4일 240억6794만원에 달하는 횡령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자기자본 약 107억원의 두 배를 넘어서는 액수다. 거래소는 공시가 나오자 셀젠텍의 거래를 막았다. 이후 셀젠텍은 약 한 달 만에 상장폐지돼 정리매매 절차를 밟았다. 코스닥 상장사 한국유니온제약은 지난해 10월11일 194억4450만원가량의 횡령 및 배임이 발생했다고 처음 공시한 이후 13차례나 횡령·배임 혐의 발생을 알렸다. 액수를 모두 합치면 260억4881만원이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한 경우 한국거래소는 해당 종목에 대한 거래를 중단시킬 수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에 따르면 횡령 및 배임 규모가 자기자본의 5%(대기업은 3%) 이상, 임원의 경우 자기자본의 3% 또는 10억원 이상이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횡령 등 배임으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해 거래정지 된 종목은 총 17개다. 2022년 12개, 2023년 20개 등 매년 횡령 및 배임으로 거래정지 되는 종목이 생겼다.
횡령 및 배임으로 거래정지 된 상장사의 '끝'은 좋지 않다. 심각한 경우, 횡령 및 배임에 연루된 해당 종목은 실질심사 끝에 상장폐지 될 수 있다. 한순간에 소액주주의 돈이 날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2~2023년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발생했다고 공시한 43개 기업 가운데 9개 기업은 현재 상장폐지 된 상태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티엘아이는 2023년 3월 창업주 김달수 전 대표의 배임 혐의로 인해 거래정지 됐다. 이후 티엘아이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고 개선기간을 부여받았지만 지난해 11월 결국 상장폐지 됐다.
수천억 횡령해도 최대 '11년'…미국선 징역 150년도
횡령 및 배임에 대한 처벌이 약해 관련 범죄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에 시행된 횡령 및 배임의 양형 기준은 큰 변화 없이 15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2215억원 횡령 사건, BNK경남은행의 3089억원 횡령 사건 등 몇천억 원대 횡령 사건이 매년 벌어지고 있는데 최대 형량의 기준이 되는 횡령 및 배임 액수는 300억원이다.
처벌 수위도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낮다. 한국에서는 300억원 이상의 횡령 범죄를 저지르면서 대량의 피해자를 낳아 가중처벌 대상이 돼도 최대 형량이 11년이다. 감경 사유가 있으면 수천억 원을 횡령해도 징역 4~7년형에서 처벌이 끝난다.
미국의 경우 형벌 기준을 43단계로 나누는데 횡령은 7단계부터 시작한다. 횡령 액수, 피해자 수, 범행 수법, 전과 유무 등을 고려해 단계가 올라가는데, 금융업 종사자 등 특정 직업군에 따라 더 강한 처벌을 하기도 한다. 은행원이 횡령 범죄를 저지르면 연방법상 특정 범죄로 분류돼 최장 3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은 2009년 650억달러 규모의 금융사기와 직원연금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50년을 받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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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양형 기준을 만들 때는 1000억원대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상황이 많이 변했다"며 "미국은 횡령 및 배임 범죄의 양형 기준을 횡령 액수별로 세분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눈물' 글 싣는 순서
①임원 횡령으로 거래정지...자본시장에 무너진 한 가정 이야기
▶3년간 1조원 넘는 상장사 횡령 범죄 발생…작년만 4025억원
②거래정지·상장폐지 이어지는데...횡령·배임 처벌 '솜방망이'
5억 이상 횡령 78건 중 가중처벌은 7건뿐…주주들 엄벌 탄원에도 '솜방망이' 처벌
③특경법상 횡령 1심 판결 전수조사…고액 횡령 범죄 단죄 어려워
소액주주 배제된 주주총회…'일방통행'에 시름
④주식회사의 '꽃' 주주총회 현장서 외면받은 주주들 목소리
횡령죄 처벌 강화 제자리걸음..."정보 비대칭 문제라도 해결 시급"
⑤소액주주·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액주주 보호받는 법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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