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美서 자료 발견
농장에서 이름대신 '381'번호로 불려
대한인국민회 통해 애국공채 등 매입
일기, 여권, 희귀자료 등 1000여점 공개
함씨 가족과 함 전 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최해나, 함태영 전 부통령, 함호용, 장녀 함순이, 함순이 장녀 줄리엣 오. 줄리엣 오는 함씨 일가 자료의 기증자이기도 하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100여년 전 하와이로 이민 간 미국 이민 1세대로서 사탕수수 노동자로, 학자로, 목회자로 일생을 살다간 '고(故) 함호용 선생' 일가의 자료가 미국에서 발견돼 주목을 받고 있다. 총 1000여점에 육박하는 함씨 가족과 관련된 자료들은 개인사를 넘어 해방 전후 이민 1세대의 삶과 독립운동사,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 이승만 정권 시기의 정치ㆍ경제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지난달 8일부터 18일까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리서치도서관을 방문했다. 이 대학이 기증을 받았다는 '함호용 자료'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함씨의 일기를 포함한 원고 105점, 복식류 63점, 공예품 36점, 서적류 269점, 편지류 291통, 희귀자료 196점, 여권ㆍ인쇄물ㆍ스크랩 등이 이곳 대학에 스페셜컬렉션으로 소장돼 있었다. 함씨의 외손녀인 줄리엣 오 부부가 지난 2006년 기증한 것들이었다. 이 기증자료를 또다른 미국 이민 1세대인 독립운동가 고(故) 김 호씨의 외손자이자 재미사학자인 안형주 선생이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봤고, 이에 대한 정밀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재단측에 조사를 요청하게 된 것이다.
함 씨는 1868년 경기도 광주 서면 고덕리에서 출생했다. 1899년 진사 최선영의 딸 최해나씨와 혼인, 1905년 몽고리아호에 탑승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다.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 부부는 하와이안 커머셜 앤 슈가 컴퍼니(Hawaiian Commercial and Sugar Company)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소장한 최해나씨의 육성 증언에 당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배 속에서 배 기름 냄새하고, 소ㆍ말을 넣어서, 소ㆍ말 냄새가 나고 구역질이 나고… 둘이 열흘을 굶고 있으니 기운이 하나도 없어, 그전에 대한 땅에서 삼이라는 약을 가져온 거, 약을 그걸 칼로 갈아 가지고 물 떠다가 그거 한 갑씩 물 먹고 삼가루 조금 타가지고 먹기를 한 주일 반 열흘동안 먹고 호놀룰루 오니까 머리가 흔들흔들…"
이번 조사에서 살펴본 함씨의 농장일지에는 그가 일터에서 이름이 아닌 등록번호 '381'로 불렸고, 일당 1.5달러ㆍ매달 10달러 내외의 수당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곤궁한 가운데서도 함 씨 부부는 조국애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두 사람은 1909년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공립협회와 통합된 대한인국민회에 가입했고 이곳을 통해 수차례 애국공채를 매입했다. 1919년에 대한독립운동비 제일차의연금과 대한민국 자유공채금 등을 냈다는 기록도 보인다.
함씨가 일기로 평생을 기록한 41권의 수첩에서는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의 경제적 생활상에서부터 미주한인들의 독립운동 지원, 6촌 지간인 함태영 부통령과 그의 아들 함병춘 등 일가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민 초기 함호용과 최해나, 그들의 자녀인 함순이, 함노마, 갓난아기인 함점순으로 보아 1913~1914년 추정.
함 씨는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대한인국민회와 한인공제회, 동영학교 학무, 영안회 회장, 한인감리교회의 목회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그의 일기는 단순히 일상생활의 스케줄을 적어둔 개인일지가 아니라 문집 등이 합쳐진 복합적 성격의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재단 관계자는 "함씨는 단순히 노동자로서의 삶만이 아니라, 독립운동 지원, 목회자 활동과 더불어 학자로서의 면모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라며 "논어 등 고전을 필사했던 기록이나 일기에 약재 등 효용을 써 놓은 것을 보면 지적 탐구심도 높았던 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미국에서 가져온 이 자료들의 견본들을 토대로 세부적인 분석을 거쳐 연말께 종합조사보고사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함호용 일가 자료'를 보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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