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찬물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유로존 내에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긴축이 아니라 부양(성장)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 또 어깃장을 놓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은 다른 남유럽 국가들과 반대로 기준금리 인상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차기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통화정책회의에서 ECB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유로존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 등 경제지표가 부진한데다 주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최근 긴축 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며 성장 전략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실업자 수는 600만명을 넘어섰고 프랑스 실업자 수도 사상 최대인 320만명에 이르렀다. 이에 장기간의 긴축 정책이 유럽 경제를 오히려 더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며 긴축이 아닌 성장을 위한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럽 전역에서 커지고 있다.
긴축 정책을 주도해왔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메르켈 총리는 "ECB는 분명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입장에서는 기준금리를 약간 올려야만 할 것 같다"며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경우 기업들의 자금 융통이 원활해지도록 훨씬 더 많은 유동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기준금리와 관련해 말한 것은 이례적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해왔고 때문에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가 금기시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긴축에 대한 반감으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자 독일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최근 ECB가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3%로 이내로 줄이는 시한을 연장해 달라는 프랑스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독일의 긴축에 대한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독일은 여전히 긴축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독일 출신 ECB 집행위원인 외르크 아스무센은 재정적자 비율 3% 달성 시한을 연장해준 것이 공짜 점심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부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유로존에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 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준금리 인상 발언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저축은행 주최 컨퍼런스에서 나왔다.
메르켈 총리는 저금리 환경이 저축은행 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밑돌아 저축은행들이 예금자들을 유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게오르고 파렌숀 저축은행 협회장은 "ECB의 저금리 정책은 예금자들의 자산을 몰수하는 것"이라며 "예금자들은 저금리 시기가 가능한 한 빨리 끝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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