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배우 엄현경이 연기한 MBC 드라마 '마의'(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속 소가영은 분명 우리가 그동안 봐온 사극에 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캐릭터였다. 4차원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는 말로 포장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가영을 연기한 엄현경은 '마의'에서 특유의 존재감을 한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예쁘장한 외모에 통통 튀는 발랄함을 지닌 엄현경을 드라마 종영 후 만났다. 그동안 브라운관에서만 보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여지없이 재현됐다. 엄현경은 "소가영은 처음부터 있던 캐릭터가 아니라, 시놉 작업을 하며 중간에 만들어졌다"며 '마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털털한 소가영 vs 사교성 없는 엄현경
엄현경은 '마의' 촬영 전 테스트를 받았다. 소가영이 섹시 한 캐릭터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엄청난 고민을 했다. 조선시대에 섹시한 캐릭터? 도저히 감이 오지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다시 털털한 캐릭터로 간다는 말을 듣고는 ' 멘붕'이었다. 다행히 대본이 나왔을 때는 "이건 내가 해야 되는 캐릭터"라며 딱 느낌이 왔다.
"원래 대본 리딩할 때는 사극 톤으로 하려고 노력 했었어요 . 그런데 감독님이 소가영은 사극과 관련된 게 아니니 현 대어로 하라고 주문하시더라고요. 뭔 만들려고 하지 말라 고 하셨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는 말씀에 정 말 내 맘대로 했죠. 따로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해서 나온 건 아니었어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학드라마였기에 '마의'에는 유독 진지한 장면들이 많았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다. 그래 서 분위기를 환기시켜 줄 코믹한 장면은 필수였다. 소가영은 그런 코믹한 장면의 한 축이었다. 이 때문에 애드리브도 많았을 것 같지만, 엄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저는 대사에 충실한 편이예요. 톤 하나 안 틀리게 하려고 노력하죠. 지문 그대로 해요. 대사에 나온 말 그대 로 하고.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애드리브가 많지 않아요. 오히려 얼뜨기 3인방(인교진 장희웅 윤봉길)이 대사보다 애드리브가 많았어요.(웃음)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털털함이 무기였던 소가영과 달리 엄현경은 유독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촬영장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드물다. 조용한 편이다. 그런데, '마의' 촬영 후 '긴장소녀' 엄현 경이 변했다. 이제는 제법 사교성도 생겼다.
"털털한 부분은 소가영과 비슷하긴 해요. 저도 꼼꼼하거나 여성스럽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사교성이 없어요. 낯을 많이 가려요. 가영이는 어딜 가도 잘 어울리고 말도 잘 걸지 만, 정작 저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소가영을 연기하면서 많이 밝아졌어요. 다 친해졌어요.(웃음)"
◆ 조승우 유선, 그리고 유재석
함께 호흡을 맞춘 '얼뜨기 3인방'은 물론, '마의'의 주인공이었던 조승우 역시 엄현경이 잊을 수 없는 '선배님'으로 남았다. 또 단아한 매력을 한껏 뽐낸 장인주 역의 유선 역시 특별한 인연이 됐다. 엄현경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맥'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얻은 셈이다.
"조승우 선배님 처음 뵀을 때는 솔직히 긴장했었어요.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했고, 뮤지컬에서는 신이시잖아요? 영화 '말아톤' '타짜'에도 나오셨고. 막상 그런 분이랑 같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주눅도 들었는데, 정말 인간적이고 편하게 해주셨어요. 첫 촬영인데도 호흡이 잘 맞았어요."
엄현경이 전한 촬영 현장에서의 유선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장인주라는 캐릭터는 묵직했지만, 정작 장인주를 연기한 유선은 가벼웠다. 엄현경은 "유선 선배님, 캐릭터와는 달리 재밌는 분이시다. 은근 개그 욕심도 있으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개그맨 유재석과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유 재석과는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유재석 덕분에(?) 엄현경은 '긴장소녀'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한 탓에 생긴 별명이다.
"긴장은 평생 할 것 같아요. 예능은 특히 다르더라고요. 지 금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것도 긴장되고요.(웃음) 물론, 가영의 영향 덕인지 많이 나아진 거예요.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좀 뻔뻔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아, 유재석 오빠를 얼마 전에 만났는데, 저에게 긴장소녀라고 부르시면서 기억해주시더라고요. 5, 6년 정도 지났는데도 절 기 억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감사했죠."
◆ 4년간의 공백…그리고 복귀
'마의'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엄현경이 었지만, 여전히 그를 생소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4년이란 공백 기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엄현경은 "이미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 비축해 있는 체력이 많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연기했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해보 고 싶어요. 청순한 캐릭터요. 그걸 지금 해보면 어떤 느낌 일지 궁금하거든요. 좀 다르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신경은 제로지만, 액션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원래 운동을 안 하는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 감기 몸살도 많이 걸렸어요. 또 피부도 따로 관리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영양크림 아이크림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웃음)"
엄현경은 공백 기간 연기자라는 직업에 물음표를 달았다. 원래 꿈은 연기자가 아닌 유치원 교사였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한 선배로부터 들은 "중간에 하기 싫어서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게 연기자다"라는 말도 크게 한 몫 했다.
"결혼 하신 분들도 나중에 다시 연기를 하시잖아요? 나도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쉬면서 TV에 나오는 분 들 보면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벌써 잊혀진 건 아닐까 걱정도 됐고요. 조금 애매한 위치에 남을 뻔했는데, 다행히 이병훈 감독님 덕에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죠."
이제는 정말 연기만 하고 싶다는 엄현경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다른 길 생각 안하고 오로지 외길만 걷겠다는 다짐도 했다.
"실제 주변에서 볼 수 도 있을 것 같은 캐릭터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연기를 잘 하고 싶어요. 어딘가 살아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 이질감이 없도록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엄현경이라는 배우가 어떻게 성장 해 가는지 보시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장영준 기자 star1@
사진=송재원 기자 sunn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