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세종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동학사(東鶴寺)가 있다. 지금 벚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며칠 동안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피어나던 꽃눈이 살짝 움츠려들긴 했다. 그래도 동학사 가는 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벚꽃은 장관을 이룬다. 우아하게 휘어지고, 몇 백 년을 견딘 벚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길을 걷노라면 자연이 만든 선물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를 먹은 벚나무들은 1300년에 이르는 동학사의 역사와 같이 한다. 떨어지는 꽃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릴 때면 눈이 나리는 것인지 자연의 섭리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동학사는 남매탑 전설로 유명한 상원조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청량사로 불렸다. 920년 고려시대의 도선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고 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렸다. 이후 절의 동쪽에 학(鶴)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 동학사라는 설과 고려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중심인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셨다 해서 동학사라는 설명도 있다.
크고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고찰 중의 하나이다. 세종청사의 역사도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시작점에 서 있다. 세종청사에는 아직 몇 백 년 된 벚나무도, 나이를 먹은 소나무도 많지 않다. 전부 새로 옮겨 심은 나무들이라 올해를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는 수준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만큼 군데군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도 많다.
새로운 행정부 역사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첫 시작을 위해서는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후세대들에게 어떤 의미로 청사가 자리 잡을 것인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세종청사는 '충청도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정부청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모든 업무와 시스템은 여전히 청와대와 서울청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관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으로 서울에 출장 가는 것이 잦다. 공무원들도 서울에서 출퇴근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과천 정부청사가 자리를 잡는 데 적어도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몇 달 만에, 몇 년 안에 세종청사가 행정부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서두를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울중심으로 펼쳐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행정업무를 세종청사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오는 12월에 복지부, 문화부 등 추가로 부처가 세종청사로 내려온다. 국무회의가 세종청사에서 열리고 각종 현안 보고가 세종청사에서 자리 잡을 때 세종청사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세종청사 역사는 동학사 벚나무가 꽃잎을 휘날리는 장관만큼 이나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몇 십 년 뒤, 혹은 몇 백 년 뒤 후세대들이 세종청사 역사를 떠올릴 때 '혼란과 우여곡절의 역사'를 대화의 중심으로 삼는 게 아니라, 세종청사의 아름다운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동학사의 봄은 찾아오고 벚꽃은 아름답게 난분분 휘날리는데 세종청사에는 아직 따뜻한 봄과 꽃향기 보다는 혼란과 걱정이 앞선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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