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지난 시즌은 아쉬웠다. 삼성의 독주를 견제할 대항마였지만 뒷심부족으로 3위에 그쳤다. 뒷문은 그래도 탄탄했다. 스캇 프록터는 평균 시속 147.6km의 강속구를 앞세워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79을 남겼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은 8월 이후 그를 향한 신뢰를 접은 듯했다. 사실 프록터는 후반기가 더 좋았다. 13세이브 평균자책점 0.81을 기록했다. 전반기 평균자책점은 2.45였다. 김 감독의 속내를 알긴 쉽지 않다. 글쓴이는 적지 않은 볼넷(9이닝 당 3.42개)과 압도적이라기엔 적은 탈삼진(9이닝 당 7.48개), 이로 인해 늘어나는 투구 수(이닝 당 16.2개)를 불안요소로 느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 감독의 불신과 적잖은 연봉에 부담을 느낀 두산은 프록터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두산은 김 감독의 요청에 여러 명의 왼손 투수를 영입리스트에 올렸다. 1순위는 조쉬 아웃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웃맨은 제구가 다소 불안하지만 평균구속이 150.5km에 이르는 매력적인 투수다. 두산의 구애에도 아웃맨은 콜로라도에 남으며 빅리그 도전을 택했다. 수준급 왼손투수들이 진로를 확정짓자 두산은 켈빈 히메네스, 막시모 넬슨과 같은 부상경력이 있는 선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하지만 오클랜드와 마이너계약을 맺었던 개릿 올슨이 한국행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고심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슨은 올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5경기에 등판, 5이닝 투구에 그쳤다. 빅리그와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올슨 영입은 두산의 올 시즌 목표가 우승보단 포스트시즌 진출에 무게를 두고 있단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두산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실패를 만회하고자 더스틴 너퍼트와의 2년 재계약,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김동주와의 재계약, 프록터 영입 등 많은 투자를 감행했다. 올해는 홍성흔 영입을 제외하면 큰돈을 쓰지 않았다. 이는 두산의 야구단 운영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산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신인드래프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천에 있는 2군 시스템도 효율적으로 운영, 매년 유망주를 배출했다. 자체적으로 1군 전력을 키우는 뎁스의 야구였다. ‘화수분 야구’라 불리는 두산의 시스템은 ‘저비용 고효율’의 야구다. 실적을 인정받은 두산 프런트 고위간부들은 그룹차원에서 보상을 받았다. 김진 전임사장은 야구단 사장으로는 드물게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실무를 총책임자였던 김승영 단장과 김태룡 운영홍보부문장도 각각 사장과 단장으로 승진했다. 저비용고효율 야구를 한 이들에게 모기업은 지난해 많은 돈을 쓸 권리를 줬다. 그러나 우승이란 결실은 맺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년 연속 많은 돈을 쓰고도 우승에 실패하면 그룹차원의 책임추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정적인 유망주
올슨은 직구 평균구속 143km에도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8번으로 볼티모어에 지명됐다. 볼티모어는 공 끝 움직임이 지저분하고 직구 제구력이 좋단 점에 주목했다. 또 체인지업과 승부구로 던지는 커브가 선발투수로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 내다봤다. 볼티모어의 기대대로 올슨은 고속 성장했다. 입단 2년만인 2007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트리플A 노포크에서 128이닝 동안 9승 7패 39볼넷 120탈삼진 평균자책점 3.16의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승격사유였다. 빅리그에서 올슨은 1승 3패 평균자책점 7.79를 남겼다.
올슨은 행복한 순간 불행을 맞았다. 2년(2006~7년) 동안 300이닝이 넘게 던지며 몸에 무리가 왔다. 대학 시절 100이닝 이상을 던져본 적 없던 그는 2007년 9월 6일 왼팔 염좌로 부상자명단에 오르며 시즌을 마감했다. 재활에 몰두한 올슨은 이듬해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트리플A에서 남긴 성적은 훌륭했다. 4월 한 달간 5번 선발 등판, 평균자책점 1.85를 남겼다. 바로 빅리그로 복귀한 그는 7경기에서 4승 1패 평균자책점 4.03을 기록하며 선발투수로 안착하는 듯 했다. 하지만 6월 이후 급격히 무너지며 9승 10패 평균자책점 6.65로 시즌을 마감했다. 약점으로 체력이 거론된 건 이때부터였다. 큰 기대를 걸었던 볼티모어는 이내 그를 시카고 컵스로 보냈다. 올슨은 열흘 뒤 다시 시애틀로 자리를 옮겼다. 잭 쥬렌식 단장은 올슨의 경쟁력이 여전히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맡긴 보직은 선발이 아닌 불펜이었다. 2009년 5선발과 롱릴리프를 오갔고 이듬해 불펜투수로 전향했다. 이후 35경기에서 올슨은 24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할 만큼 안정적인 불펜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9월 9경기에선 8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피츠버그(2011년)와 뉴욕 메츠(2012년)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빅리그에서 4.2이닝을 던지는데 그치며 전형적인 쿼트러플A형 선수로 굳어버렸다.
올슨은 그간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남겼다. 최근 3년간 트리플A에서 254.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92를 기록했다. 하지만 선발 등판은 42경기에 불과했다.
올슨은 4가지의 구종을 구사한다. 포심, 슬라이더, 슬러브 성 커브, 체인지업이다. 슬라이더와 커브는 피치 에프엑스(Pitch F/X) 데이터에서 구종 분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커브처럼 손목의 스냅을 주면서 검지로 공을 강하게 채어 슬러브 형태의 궤적을 보인다. 슬러브는 그간 왼손 타자에게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오른손 타자에겐 승부구로 슬러브와 체인지업을 반반씩 활용했다. 상대 성적까지 좋았단 건 아니다. 직구, 변화구 모두 오른손 타자를 제압하기 역부족했다. 이는 빅리그에서 중간계투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 주된 원인이 됐다. 결국 올슨은 유인구 위주로 도망가는 피칭을 했고 대학시절 좋은 제구를 인정받았음에도 볼넷을 남발하는 투수가 됐다. 2007년 트리플A에서 9이닝 당 볼넷은 2.74개. 하지만 빅리그에서 수치는 1.5배 가까이 늘었다. 올슨의 빅리그 6년 통산 9이닝 당 볼넷은 4.47개다. 트리플A로 내려가서도 수치는 줄지 않았다. 최근 3년간 9이닝 당 볼넷은 4.1개다.
성공의 키는 직구 자신감
두산의 올슨 영입은 중심타선에 왼손타자가 가득한 삼성을 견제하기 위한 복안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승엽, 최형우, 박한이 등 수준급 왼손타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러브는 충분히 통할 수 있다.
사실 프로야구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다. 올슨은 빅리그에서 직구를 던지다 장타를 허용한 아픈 기억 탓에 볼넷이 폭등했다. 하지만 평균 143km는 프로야구에서 결코 느리지 않은 구속이다. 더구나 프로야구는 최근 장타자 부재를 겪고 있다. 직구가 통한다면 슬러브와 체인지업은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경우 올슨은 니퍼트, 노경은의 뒤를 받치는 3선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반대로 빅리그나 트리플A에서처럼 볼넷을 남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 감독은 타자의 삼진과 투수의 볼넷을 무척 싫어하는 수장이다. 올슨이 박병호, 강정호 등 리그정상급 오른손 타자가 버티고 있는 넥센을 상대로 볼넷과 홈런을 헌납한다고 가정해보자. 김 감독은 선도가 떨어지는 원두를 오버로스팅해 탄내와 쓴맛만이 느껴지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들 것이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