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무직·장기실직'도 살려라···나눠 벌고 같이 벌고
아시아경제 주최, 일자리 특별 좌담회
일자리는 대한민국의 성장, 그것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이다. 일자리는 그 자체로 복지이고, 나눔이며, 희망이다. 따라서 좋은 정책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며,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정책은 나쁜 정책이다. 아시아경제신문은 '일자리 이니셔티브를 가져라'는 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각계각층의 오피니언리더를 초빙해 일자리 좌담회를 마련했다.
사회: 아시아경제신문은 '일자리 이니셔티브를 가져라'라는 주제로 연초부터 기획 시리즈를 싣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공약도 그렇고 정책의 화두도 '일자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겠죠. 일자리가 있어야 복지도, 성장도 있는 법입니다. 아시아경제신문은 기획 시리즈에서 각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는데요, 오늘 좌담회를 통해서 일자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일자리'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권택범: 취업준비생에겐 일자리란 삶 그 자체입니다. 대학 졸업생 가운데 상당수가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대학등록금이 기본적으로 학기당 300만원을 넘어가고 이공계 계열은 한 학기당 400-500만원 수준이에요. 생활비도 그렇고 모든 비용을 부모님에게 손 벌릴 수 없으니까,자연스럽게 빚을 지게 됩니다. 그러니 일자리라는 게 생계수단을 넘어, 빚을 갚기 위해서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평균 20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사회에 나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김경선 고용노동부국장: 일자리란 구직자에게는 생계수단이지만, 공무뭔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숙제입니다.국가적으로는 사회통합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복지의 토대가 되고, 성장 자체를 나타내는 지표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일자리는 곧 성장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정책분석실장: 일자리는 복지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10명 가운데 7명은 일자리가 있어요. 우리는 6명이 조금 못 되는 정도죠. 만약 7명을 넘지 못하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지금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등도 모두 취업률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니, 정부 수입도 줄고, 자연스럽게 복지혜택이 줄어드는 거죠.
사회: 당연한 얘기겠지만 개인의 입장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도 약간씩 달라지는군요.
김성오 아이쿱 협동조합 연구소 연구위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의 질'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총고용비율, 그러니까 전체 고용률과 관련된 통계를 이야기 하는데 정규직 일자리와 비정규직 일자리의 격차가 너무 클 경우 고용비율이란 통계만 갖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차이가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들여다보면 정규직 대 비정규직 일자리가 7.5대 2.5로 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높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4.5대 5.5로 비정규직이 훨씬 높죠. 임금격차도 마찬가집니다. OECD 평균이 10대 8인데 우리는 10대 4로 절반도 안 돼요. 일자리 문제의 본질도 일 할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정규직으로 일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정규직 일자리가 적고 비정규직 비중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입니다.
권택범: 비슷한 이야긴데, 일자리의 안정성이 중요합니다. 취업을 위한 스터디 그룹에선 매번 나오는 얘기가 똑같습니다. 토익 900점, 학점 4.0이 넘는 사람들도 불안해합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구한다는 차원이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원하니까요. 정규직의 문이 워낙 좁습니다.
김인호 네오바이오텍 사장: 좀 다른 얘긴데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구인난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해외영업부 직원이 더이상 직원 못 구하겠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해외영업부같은 경우 영어와 러시아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해야 하는 데, 신입직원 연봉이 2300만원이거든요. 이 연봉으로는 그런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2800만원으로 연봉을 올려 채용공고를 냈지만 잘 구해질 지는 모르겠어요.
사회: 일자리와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점을 한번 들어볼까요.
권택범: 저는 정부에 특별히 뭘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제 입장이 어떻게든 기업체에 뽑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해요.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충족시키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김 사장: 구인난이다 보니 고졸자들의 활용에 언제나 안타까움이 있어요. 일을 같이 해봤는데 고졸자들도 생산직에서는 정말 잘 합니다. 대졸자와 차별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마이스터고 같은 제도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부에서 더 육성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어릴 때부터 직업관에 대한 교육을 해야 됩니다. 무조건 대학 가고, 대기업 가야 하는 대세에 다들 따라가려고만 하다 보니 대기업은 사람 걸러내기에 바쁘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이 되는 거에요. 대기업에 간다고 해서 인생이 행복해질 것인가,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인생을 행복하게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심어줘야 돼요.
사회: 일자리 주무부서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 국장 : 전문가, 중소기업 사장, 20대 취업준비생까지, 앞서 말한 내용이 모두 다 공감이 돼요. 요구사항이 다 다르지만 같이 풀어갈 문제이기도 하고. 정부입장에서는 구인자, 구직자 모두를 고려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미스매치 되는 부분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거든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고졸과 대졸 등 여러가지 차원에서 미스매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졸이상 학력이 필요한 직업은 전체 직업 중 20% 수준이라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 대졸은 50만명 정도 초과공급되는 반면 고졸은 32만명 가량 부족하다는 얘기예요.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은 이같은 수급의 미스매치겠죠. 아무래도 청년 구직자들은 급여의 차이도 있지만 학자금 지원 등 다양한 복지혜택때문에 대기업을 지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은 급여도 적을뿐더러 복지가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도 이런 복지를 해주는 숨어있는 강소기업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의 급여와 복지혜택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김 사장 : 중소기업은 직원 이직률이 높은 편입니다. 이직률을 줄이기 위해 여러가지 복지 혜택을 주고 있죠. 제가 들은 얘긴데 셋째를 낳으면 1000만원을 주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한 구두회사 CEO는 1억원짜리 스포츠카를 사서 결혼식 등 직원의 중요한 행사에 차를 빌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2년차 직원에게는 해외연수를 기회를 주고 말 두필을 사서 승마를 가르쳐주고 보트를 구입하는 등 여러가지 레저혜택을 주고 회사를 떠나가지 않도록 하는 거죠. 재원이 많은 회사라면 가능한 방법이지만 재원이 부족한 회사는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방법입니다. 저희 회사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인 만족입니다. 물질적 충족을 50%밖에 못해주면 나머지 50%는 정신적인 만족을 준다는 겁니다.회사의 목표만을 두고 고민하는게 아닌거죠. 정신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직원들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더라구요.
사회 :그렇다면 정부는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남 실장 : 전 세계 내로라하는 정책은 아마 우리나라에 다 들어와 있을거예요(웃음). 그런데 실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은 별로 없어요. 정착이 잘 안되고 있다는 거겠죠. 노동은 시장입니다. 고용문제는 경제문제이고요.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세우건 이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면 결국 정책이 꼬이게 마련입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할 경우 가격이나 수량이 조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량조절 즉, 고용조정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임금이 조정돼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시장 기능이 절대 살아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양도 조절이 잘 안되고 임금도 경직적인 상황이예요. 근속에 따른 임금상승률도 가파릅니다. 수량, 가격 모두 조정이 안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둘 중에 하나는 조정이 돼야 합니다.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을 낮추자'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인거죠. 임금 조정도 결코 만만한문제는 아닐겁니다. 그렇지만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작은 수단을 활용해 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도 해결안되고 부작용도 커지게 됩니다. 결국 원칙을 중시하고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사회 : 대기업이 받는 과도한 임금을 깎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남 실장 : 지금 받고 있는 임금이 생산성에 적합한 수준이라면 문제가 없겠죠. 그러나 기여한 몫 이상을 가져가고 있는 건 문제입니다. 노동시장 공정성 차원에서도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자신의 생산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가져가는데 그걸 부담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의미니까요. 현재 대기업,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굉장히 큽니다. 5년, 10년 뒤 임금격차는 훨씬 더 커집니다. 그래서 구직자들은 중소기업 대신 대기업을 가려고 하고 임금은 낮지만 고용이 안정적인 공공영역으로 가려는 거죠.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야 해요.
김 국장: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용총량을 높이기 위해 임금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지금 새로운 정부에서도 고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국정운영 목표로 잡고 있어요. 만 15세부터 64세 기준 지난해 평균이 64.2%였죠. 5.8% 높이겠다는 겁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총량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으면 목표달성은 힘들다고 보고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성위주로 소수가 너무 장시간 일하는 것'이라고 봐요. 소수가 장시간 근로를 하면서 과도한 임금을 받고 있는 구조죠. 네덜란드 모델을 예로 들자면 고용률로 봐서는 네덜란드가 74.4%로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주 40시간 고용률로 보면 네덜란드가 우리나라보다 고용률이 1%포인트 정도 낮아요. 단시간 근로비중이 네덜란드는 30%인 반면 우리나라는 10%로 우리나라는 단시간 근로비중이 낮은 거죠.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적은 시간동안 일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사회는 2교대제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3교대제로 바꿔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권택범 : 그러면 질 나쁜 파트타임 일자리만 늘어나지 않을까요
김 국장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낮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안 될 일이예요. 시간만 짧은 것이지 고용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야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위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나 고령자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를 새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인생사이클을 보면 애를 낳고 키워야 하는 기간과 일을 많이 하는 기간이 겹쳐요. 과거에는 한 사람의 가장이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 구조가 가능했는데 현재는 그게 힘듭니다. 결국 두 사람이 풀타임 근로를 하거나 한사람은 풀타임, 한 사람은 파트타임하는 식으로 흐름이 바뀌어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김 사장 :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를 좀 더 확대하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청년 인턴제를 하면 고용이 훨씬 수월해져요. 현재 4만명~5만명 수준인데 한 10만명으로 크게 늘려줬으면 합니다. 또 교육지원제도도 더욱 확대돼야 합니다. 직원이 회사에 남는 건 월급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회사가 발전하면서 자신도 같이 성장하는 것을 느낄 때, 그럴 때 계속 남아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중소기업에 맞는 맞춤형 제도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사회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는 어떤 제도인가요.
김 국장 : 단순히 대학생이 방학 때 스펙쌓기 용으로 하는 인턴제가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전 단계로 인턴생활을 하는 것이라 보면 돼요.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는 정규직 전환율이 85%에 달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잖아요. 대학생들은 가보지 않고 중소기업에 한계를 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막상 가서 일해보면 중소기업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부가 구직자에게 실제로 가서 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6개월동안 임금의 50%를 지원해주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추가적으로 6개월동안 임금의 65%를 지원해줍니다.
김 위원 : 고용없는 성장은 '악(惡)'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극화 문제가 일정부분 해소될 때까지는 모든 성장전략이 질좋은 고용을 위한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경제부총리 대신 고용부총리를 두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고용이 가장 큰 문제다'라는 기본 인식이 필요한 거죠. 전반적으로 노동시장은 중향 평준화가 돼야 할 겁니다. 현재 10% 수준인 노동조합률을 70%까지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회 : 바쁘신 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른 분들끼리의 대화였지만 일자리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건전한 대안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많은 말씀 주셨습니다.
정리=이지은·김혜민 기자 leezn@
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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