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 지난해 12월25일 낙하산 발언 후 이상 기미 보이던 양측 관계, 특사 논란으로 깨지기 일보 직전...신구 정권간 갈등 본격화되나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이명박 정권은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이나 중상 정도겠지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사망할 것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계 일각에서 떠돌던 말이다. '공천학살'의 경험이 있는 '친박' 세력이 야당 보다 더 현 정권 세력에 한이 더 깊고, '같은 편'이라 아는 정보도 많아 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더 강도 높은 정치적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측과 박 후보 측이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같은 예측은 빗나가는 듯했다. 박 후보 측이 적극적인 '선 긋기'에 나서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탈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권당 후보를 차기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현직 대통령이 됐다. 박 후보 측의 야당 후보에 대한 서해북방한계선(NLL) 관련 공세에선 이 대통령이 직접 서해 연평도를 방문하는 등 '찰떡 공조'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 양 측 관계에서 미묘한 변화의 낌새가 느껴지더니 최근 들어선 "두 사람이 같은 당 소속인 거 맞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양측 관계는 박 당선인의 지난해 12월25일 '낙하산 발언' 때부터 이상 기미를 보였다.
박 당선인은 당시 서울 창신동 쪽방촌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최근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입에서 나온 낙하산 발언은 원론적인 수준의 얘기였지만 시기가 절묘했다. 당시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현 정권 실세들은 대선에서 '같은 편'인 박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이 되자 마음 놓고 '낙하산'을 곳곳에 내리꽂으려던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야 정권 교체기에 야당 소속 차기 대통령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발언이 박 당선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청와대에서 임기 종료 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이 대통령의 측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공기업-정부 산하 기관 등에 자리를 알아보던 청와대 직원들은 여태까지 취업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대통령도 아끼던 측근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만 보고 있다. 양측의 감정이 기본적으로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당 소속'이라는 명분하에 큰 파열음 없이 살얼음 위를 걷던 양 측의 관계는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추천ㆍ택시법(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거부권 행사 논란, 4대강 사업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등을 거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다가 이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 사면 단행 여부를 두고 폭발 직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양 측의 관계는 박 당선인의 낙하산 발언이 있은 지 3일 만인 지난해 12월28일 박 당선인과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담을 가지면서 풀어지는 듯 했다. 지난 3일 양측의 합의하에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차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할 때까지도 양 측의 화해 국면은 이어졌다. 이달 중순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명박 정부 때리기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화해 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청와대가 추천해 박 당선인이 최종 낙점한 것으로 알려진 이동흡 후보자가 '헌재 사상 최악의 재판관'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망신을 당하면서 양 측 진영 간 책임론이 불거졌다. 박 당선인 측은 "왜 저런 인간을 제대로 검증도 안 하고 추천했나"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청와대 측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결국 박 당선인 측"이라며 억울해했다.
갈등은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터져 나왔다. 박 당선인이 지난 대선 때 사실상의 공약으로 추진, 당선되자마자 국회에서 처리한 택시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양 측의 갈등이 불거졌다. 박 당선인 측은 청와대 측이 국회 합의 처리 정신을 받아 들여 법안을 수용ㆍ공포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여론의 눈치를 보던 청와대 측은 거부권 행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대통령의 5년 임기 동안 처음 행사한 거부권이다.
이러자 박 당선인 측은 "어차피 국회에서 재의결을 해 통과시킬 밖에 없는 데 임기 말인 이 대통령이 거북스러운 법안을 자신이 적극 처리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쇼를 하고 있다"며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청와대 측은 또 나름대로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고 법리적 문제, 재정 부담ㆍ형평성 논란 등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자기들이 취임한 다음에 통과시키면 될 것을 왜 우리에게 떠넘겼나"며 불만이다.
지난 18일 감사원이 '돌발적으로' 발표한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도 양 측 관계를 악화시켰다. 박 당선인 측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잘못된 점이 있다면 위원회를 구성해서라도 잘 검토해서 바로잡자"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정현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은 지난 18일 고위당정회의에서 국민적 의혹 해소를 현 정부에 주문했고 새누리당 비대위원ㆍ정치쇄신특위위워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회 청문회 개최를 주장했다. 청와대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업"이라며 이 대통령의 핵심 치적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처럼 파열 조짐을 보이던 양측 관계는 이번 주말 불거진 이 대통령의 특사 단행 논란으로 인해 더욱 더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당선 이전부터 대통령의 임기 말 특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박 당선인 측은 주말인 26일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통해 "과거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졌던 특별사면 관행은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대통령 측이 박 당선인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사를 단행할 기미를 보이자 더 이상 딴 짓을 못하게 쐐기를 박기 위한 입장 표명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측은 이에 대해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단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바로 다음날인 27일 일부 언론을 통해 "이르면 29일 특사를 단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하던 양측 관계가 아예 깨져버리기 직전인 것으로 보인다. 전임 정권 시절의 각종 시책과 업적을 모조리 부인하고 '전 정권 사람'도 모두 쫓아 내버리는 신ㆍ구 권력간의 정면 충돌로 이어질 지 여부가 주목된다.
김봉수 기자 bski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