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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 처음으로 도시락 받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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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 처음으로 도시락 받던 날 ▲ 강원랜드 카지노 앞에서 입장 대기중인 고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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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지난 24일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강원도 정선 고한읍 모처. 말쑥한 재킷차림 40대 신사, 지적인 인상의 50대 남성, 젊었을 때 힘깨나 썼을 법한 덩치의 60대, 고상한 외모의 할머니까지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탁자 위에 놓인 상자 안에서 호박전과 고기 반찬 등이 들어있는 따뜻한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집에 있는 친구들에게 갖다 준다며 3~4개씩 도시락을 싸가기도 했다. 준비한 50인분의 도시락이 금새 동났다. 도시락을 받아든 이들의 얼굴에는 멋적은 표정과 기쁜 표정이 교차했다. "아이 것 참…. 반찬이 좋다"며 수줍게 웃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가산을 탕진한 후 고한 사북 지역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00년 카지노 개장 때부터 13년간 발이 묶인 사람도 있다. 혹자는 이들을 '도박중독자'라고 부른다.

장기체류하는 도박중독자들에게 월동물품을 지원한 사례는 이번이 최초다. 강원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강원랜드중독관리센터(KLACC),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 모임, 희망센터가 모여 조직한 생명사랑협의체(이하 협의체)가 지원한다.


장기체류자들은 이번 겨울이 예년보다 훨씬 힘든 상황이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대리베팅과 자리예약, 고리사채업자와 손님을 연결시켜주고 커미션을 받는 꽁지 등 앵벌이를 강력 단속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번달 15~16일 이틀에 걸쳐 고한·사북에서 도박중독자 2명이 신변을 비관해 자살했다. 앵벌이들은 인근 모텔과 찜질방, 쪽방촌에서 지내며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못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협의체는 고한의 도박 중독자들을 보살피는 한 지역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됐다. 지원대상은 70명이다. 이들에게 협의체측이 일일이 전화 연락을 취해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도시락을 비롯한 월동 지원을 받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올 3월까지 도박 중독자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3월까지 6차례의 개인 상담 스케줄이 짜여졌다. 마지막에는 1박2일로 중독자들을 위한 힐링캠프를 연다.


이번 주 23~24일 이틀에 걸쳐 물품지원과 함께 1차 상담이 실시됐다. 마땅한 상담장소를 찾는 것도 힘들어 역 인근 다방 등에서 상담이 진행됐다. 상담역인 강원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의 김필희 팀장은 "무엇보다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김필희 팀장은 이곳에서 장기체류하는 분들과 마주 앉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가산 탕진하고 가족, 친구와도 인연을 끊은 이들이 자기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장기체류자들은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중독관리센터(KLACC, 클락)의 도움을 받는 것을 사실상 거부한다. 지원 조건이 '단도박'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출입이 완전히 정지되는 게 중독자들에게 반가울리 없다. 백내장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조차 못받고 카지노에 출입하는 이도 있는 실정이다.


김팀장은 "'왜 스스로 망가진 이들을 도와주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며 "하지만 협의체는 이들의 얼었던 마음을 푸는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도박 중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게 동시에 진행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도박중독자에 대한 관심 부족과 차가운 시선이 이들을 더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있다고 말한다. 김 팀장은 "상담해보니 물품지원에 대한 관심보다 인간적인 교류를 더 좋아하신다"며 "이 분들은 어디 가도 소외받고 자신도 옆사람을 못 믿는다. 상담 대상 70명중 10%만 나와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기체류자들을 도와주려해도 현실적인 한계가 가로막는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느정도 살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자리 대신 예약 등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앵벌이를 단속한 이후 80%가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고한, 사북 지역에 장기체류하며 앵벌이를 하는 이들이 3000명에 달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모두 추정치에 불과하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정선에서 자살한 이는 62명이지만 이중에 도박중독으로 인한 자살자 통계는 구체적으로 발표된 적이 한번도 없다.


통계를 내는 것 자체도 어렵다. 장기체류자들이 거주지를 옮겨다니는 경우가 잦고, 마음맞는 이들끼리 같은집에 살다가 수시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인구 자료 작성은 호구 조사가 기본이지만 이런 자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김필희 팀장은 "상담을 위해 연락처를 확보하고 전화를 해도 자신이 모르는 번호가 뜨면 전화를 안받는 분들도 계시다"고 말했다.


이날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한 장기 체류자 김모(56)씨는 "여기는 하루하루가 지옥같다. 도박중독은 마약, 알코올 중독보다 무서운 것"이라며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알지만 떠나온 가족과 과거 도박을 몰랐던 시절이 그리운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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