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지난 수십년 동안 투자은행은 엄청난 부(富)를 빨아들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만명을 거리로 내모는 살벌한 장소가 됐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변화를 강요 받고 있는 투자은행이 과연 새로운 활로 개척에 성공할 수 있을지 최근 살펴봤다.
지난해 10월 30일 영국 런던 소재 은행 UBS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출근하는 몇몇 직원의 출입카드가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UBS는 직원 1만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계획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사전 통보 없이 직원을 해고해버린 것이다.
투자은행의 해고는 계속됐다. UBS의 감원 직후 모건스탠리는 1600여명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로이드는 세계적으로 1만5000명을 거리로 내몰았다. 도이체방크는 투자은행 사업부에서 1500여명을 내보냈다.
이에 대해 투자은행 고위 간부들은 "투자은행의 건강을 되찾기 위한 정화의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파티가 끝났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투자은행은 바뀌고 있는 걸까. 투자은행들은 1990년대 이후 더 막강한 존재가 됐다. 모든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채 어마어마한 수익도 창출했다. 더욱이 '탈규제'라는 이름 아래 투자은행에 채워졌던 각종 족쇄가 잇따라 풀리면서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투자은행이 성장하면서 내부 구성은 바뀌었다. 과거 전통적 의미의 기업 인수합병(M&A) 컨설턴트, 기업공개(IPO) 전문가가 투자은행의 핵심 인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익률 끌어올리기가 지상 과제인 트레이더, 고객에게 감언이설로 금융상품을 파는 직원, 새로운 금융상품 모델을 개발하는 천재들이 핵심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투자은행은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데다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돼 각종 규제에 다시 얽매이게 됐다. 투자은행의 자구ㆍ변화 노력이 고개 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국 소재 경영컨설팅업체 롤랜드 버거의 마르쿠스 뵈메 컨설턴트는 "투자은행 업계가 좀더 단순화한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금융상품 단순화가 안전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투자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상품 설계가 아무리 단순해도 모든 위험을 따져봐야 한다"며 "함정은 있게 마련"이라고 경고했다.
JP모건 같은 일부 투자은행의 경우 상품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영역을 모색했다. 그러나 상당수 은행은 법과 규제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있다. 변한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한 투자은행가는 경제위기 이후에도 투자은행들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은행들이 처음에 리스크를 낮추려 애썼지만 나중에 이런 리스크를 판매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점차 새롭고 복잡한 방법들이 고안됐다. 그는 "투자은행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점차 커져 시장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됐다"며 "다음에는 더 엄청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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