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실에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의 흔적이 포착됐다."
이원기 인수위 대변인행정실장의 이 같은 공지에 17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일부 언론들은 인터넷에 '북한이 인수위 해킹을 시도했다'는 내용의 속보를 내보냈다. 한 석간신문은 기존 지면 구성을 뒤엎고 해킹 관련 기사를 1면 머리에 실었다.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 이 실장은 "오후에 책임자가 기자회견을 열 테니 들어보라"는 말로 일관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지만 좀 정리해서 말씀 드리겠다"며 대답을 유보했다. 이러는 사이 언론들은 후속 보도를 대량으로 쏟아냈다.
그러나 인수위는 오후 3시께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해킹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돌연 말을 바꿨다. 윤창중 대변인은 "인수위원과 인수위 직원들은 국가 정보통신망을 사용하는 데 반해 기자실은 상업용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외부의 해킹 시도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에 보안당국에서 인수위 행정실 측에 기자들에게 백신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개인 패스워드도 자주 교체하도록 당부해줄 것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윤 대변인은 '실제 해킹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국가보안 문제가 있다"며 답하지 않았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브리핑 단상에 올라선 임종훈 인수위 행정실장은 "인수위 입장에서 해킹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며 "그것은 보안당국만 알 수 있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는 브리핑 이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 소행인지 아닌지도 확인이 안 된다"며 "(보안당국과 인수위 행정실이) 서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예를 드는 과정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번복으로 인해 언론들은 이날 하루 종일 오보를 내보낸 꼴이 됐다. 국민들은 언론 보도를 보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일각에서는 인수위에서 이번 실수로 남북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밀실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박 당선인은 당선 한 달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수위 정례회의도 주재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인수위에 '철통 보안'을 강조해 내부 소통을 막았다. 선장이 제 역할을 못하는 배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오종탁 기자 ta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