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천해주 그 자체였다. 밝고 씩씩한 말투는 브라운관 밖에서도 그대로였다. 지난 4개월간 MBC 주말특별기획 '메이퀸'(극본 손영목, 연출 백호민)에서 한지혜는 놀랄 만큼 긍정적인 캐릭터 천해주를 연기했다. 그 덕분일까?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미소에서는 왠지 모를 긍정의 힘이 느껴졌다.
천해주는 태어난 순간부터 모진 세상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들어갔다. 아버지는 친한 친구에게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 재혼했다. 친부모의 생사조차 모른 채 해주는 보잘 것 없는 가정집에 맡겨져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계모의 구박도 있었고, 자신을 친딸처럼 생각해주던 양아버지의 죽음도 겪었지만, 해주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하지만 꿋꿋한 천해주에게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벅찬 현실이 다가왔다. 자신의 친 아버지가 그토록 저주하던 장도현(이덕화) 회장이었던 것. 해주는 졸지에 3명의 아버지를 두게 됐다. 시청자들은 '메이퀸'이 서서히 막장에 눈을 뜨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갈등이 해소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지혜는 오히려 그런 전개가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저는 마지막 회를 여행가서 또 보고 또 봤어요. 사실 막장 논란이 있었지만, 그런 깊이 있는 감정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 여겼거든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배우로서 쾌감은 좋았다. 마지막 회에 목 조르고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현장에서 준비한 것들이 있었어요. 말만 해도 서로 무슨 생각인지 알거든요. 탁탁 맞춰보고 슛 들어가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 장도현이 뛰어내릴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 장면은 대본대로 한 거예요."
막장 논란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메이퀸'은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 유종의 미를 거뒀다. 억지스런 설정보다 재미와 감동이 큰 덕분이다. 결혼 이후 오랜만의 복귀작 이었던 만큼 한지혜는 남다른 각오(?)로 작품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여자 한 명에 남자 두 명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기가 죽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러브라인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두 남자 사이에 있는 게 쉽지가 않았죠. 어장관리녀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중에는 조심스러웠죠. 재희 씨랑 김재원 씨 모두 각자의 매력을 최대한 어필 했어요 저 역시 작품 안에서 기 싸움에 밀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다들 자신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살려면 러브라인보다 캐릭터를 살리는데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메이퀸' 초반을 이끌었던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성인 연기자들에게는 득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메이퀸'처럼 인기 아역배우들이 출연하는 경우, 후속으로 등장하는 성인 연기자들에게는 이만저만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 특히 한지혜의 아역을 연기한 김유정은 능숙하게 구사하는 울산 사투리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지혜는 "나도 할 예기가 많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인터넷에서 어느 글을 봤는데, '(김)유정은 사투리를 잘했는데, 넌 뭐냐. 너는 유정이 연기하는 8부 동안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느냐'고 적었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사투리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역들의 경우 처음부터 8부 대본이 나와 있던 상황이었고, 그걸 한 달 반 가까이 찍었거든요. 계속 연습할 시간이 있었던 거죠. 반면 10일 전에 대본이 나와 3일 만에 촬영에 들어갔어요. 대본이 사흘 만에 입에 붙을 리도 없고, 첫 촬영부터 엄청 빡셌거든요. 굉장히 피곤한 스케줄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연기를 했어요.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죠. 그렇지만, 촬영 기간이 길어서 해주라는 캐릭터에 몰입할 시간은 충분했어요."
최근에는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이 불거지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진 해당 배우에게는 치명적인 오점이자, 평생의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지혜는 '연기력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덤덤하게 풀어놨다.
"이번에 연기를 하면서도 참 내공이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제가 연기력 논란에 크게 시달리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전하게 잘 하는 배우도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됐죠. 정말 연극 쪽에서 오래 일하다가 영화에서 조금씩 주목 받아서 잘 되신 분들과 비교할 수 있는 내공은 아니거든요. 작품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내공을 키워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메이퀸'을 촬영하면서 정말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죠. 물론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부족했을 수 있지만, 저 스스로는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봐요."
드라마를 마친 한지혜는 최근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연기가 재밌게 느껴져 앞으로도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힌 한지혜는 올해 아프리카 케냐에 가 우물 파기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강하게 독촉을 했어요. '우리가 이 여세를 몰아 빨리 다음 작품을 정해 쉬지 말고 맞물려서 가자'고 말이죠.(웃음) 아마 다음 작품도 드라마일 수 있지만, 영화일 수도 있어요. 오래 쉴 생각은 없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장영준 기자 sta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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