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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3>애국 선열의 성역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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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의 한탄, 이준의 기개 ··· 난 지금 역사를 걷는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3>애국 선열의 성역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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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눈 덮힌 길, 사람들이 분주했다. 추위 따위는 큰 위협이 아닌 듯하다. 좁은 길목마다 멈춰서기 일쑤다. 지나치는 이의 숨결이 귓전을 스칠 지경이다. 겨울 숲길은 전혀 적막하지 않았다. 삼삼오오 함께 걷는 이들의 조곤대는 말소리와 청량한 웃음소리가 숲을 뒤흔든다. 어느 덧 북한산 둘레길 걷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이 됐다.

애초에 겨울산 눈 내린 길에서 한적함을 바라지 말았어야 할 노릇이다. 사색은 숲이 아닌 곳에서 더 깊어질 판이다. 대신 함께 걷는 이의 손을 잡아주고, 낯선 이들의 숨결을 즐기는 것이 정답일 듯하다. 아니면 숙연한 채 걸어도 좋다. 이 길에는 숲을 걷는 이들의 숨결만 있지 않은 까닭이다.


북한산 둘레길 중 소나무 숲길, 순례길은 애국 선열들의 숨결도 가득한 성역이다. 인수봉 아래 소나무숲길, 순례길 주변에는 유난히 애국선열 묘역이 많다. 묘역과 묘역이 연결된 길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게다가 4,19묘역은 둘레길내에서 순례객의 발길이 가장 많은 곳이다. 북한산이 인문 역사적 유산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3>애국 선열의 성역을 걷다 4.19묘역

소나무숲길에선 북한산을 이루는 세개의 봉우리-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수봉은 삼각산의 첫번째 봉우리다. 사면이 암석으로 깍아세운 듯 서 있다. 그 중의 한 바위는 봉우리 뒷면이 불룩 솟아 있어 마치 어린이를 업은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부아악'이라고도 부른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물색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인수봉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 성능 스님이 지은 '북한지'에는 인수봉 등에 대한 기록이다.


북한산은 고려 이후 천년동안 삼각산으로 불렸다. 북한산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이마니시 류의 보고서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조선고적조사보고, 조선총독부, 1915년)에서 유래한다. 지난 1983년 국립공원 지정 당시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명명하면서 '북한산'으로 굳어졌다. 현재 강북구가 옛 이름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씁쓸한 배경과는 달리 소나무숲길은 선열들의 발자취가 가득하다.


우이령길 입구에서 20여분 내려오면 제일 먼저 의암 손병희 묘역과 천도교의 산실인 '봉황각'을 만날 수 있다. 묘역은 길가에서 멀지 않고, 봉황각은 숲 안쪽으로 더 올라가 울창한 야산에 자리잡고 있다. 의암은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며 이곳에 봉황각을 열고 3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각각 49일간의 연성회를 열었다. 일종의 장기 수련회로 전국 교구장 483명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 중 15명이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포함돼 있다. 3ㆍ1운동 이후 봉황각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가 57년 '의창수도원'으로 개창, 오늘에 이른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3>애국 선열의 성역을 걷다 흰구름길에서 본 서울시내


소나무숲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몽양 여운형 묘역에 닿게 된다. 몽양 묘역도 숲길에서 주택가로 조금 내려와 서라벌중학교 후문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초행인 사람은 헤매기 십상이다. 집들로 둘러싸여 섬처럼 놓여진 묘역은 마치 죽음 직전에 이른 몽양의 처지를 연상시킨다. 몽양은 좌우합작과 남북통일을 주도하다 47년 7월19일 괴한의 총알에 쓰러졌다. 분열된 민족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동분서주하던 그의 묘역은 삼각산 봉우리와 묘역의 소나무들이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2구간 순례길은 애국지사들의 묘역으로 연결돼 있다. 4.19묘역과 신숙-김도연-서상일-김창숙-양일동-유림-이시영, 광복군 합동묘역-김병로-이준-신익희-신하균 묘역으로 이어진다. 순례길 내에 애국지사 묘역이 몰려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곳에 잠든 지사들은 대체로 아나키스트거나 무장투쟁에 나섰던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해공 신익희-신하균 부자가 함께 잠든 것이 이채롭다. 해공 부자는 상해와 만주 등을 누비며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고, 해방 이후엔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는 반독재투쟁에도 함께 나섰다. 하균은 여섯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상해에 있는 해공을 찾아 나섰다가 평생동안 아버지 곁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부자로, 동지로 살다가 나란히 잠든 그들은 지금 안식에 든 걸까 ?


최초의 검사 '이준' 열사도 이채롭기는 마찬가지다. 열사는 평리원 검사 시절 황제의 인척에게도 10년형을 구형하는가 하면 사면대상자 명단을 받아들이지 않는 법부 상관을 탄핵기소했을 만큼 강직한 인물이다. 열사의 사법 파동은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사면대상에 넣었던 것이 발단이 됐다. 현직 검사가 법부와 평리원의 사법기관을 탄핵한 사건은 근대 사법 사상 초유의 시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헤이그 밀사로 파견됐다가 아나키스트운동을 전개하며 일제와 싸웠다.


오늘날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의 변종 정도로 취급된다. 그러나 당시의 아나키스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자치적 질서, 개인의 자유가 연합한 공동체 사회 건설을 목표로 했다. 나중에 폭탄을 들고 목숨을 던져 싸운 이들도 대부분 아나키스트였을 만큼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해방 이후에도 아나키스트들은 이시영 선생 등 순례길에 묻힌 지사들과 함께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독재의 길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묘역 부근에 그 진정한 후예랄 수 있는 4.19 희생자들의 묘역이 자리잡은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왜 순례길 내에 선열들이 많이 잠들어 있는지 강북구에 물으니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섞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북한산 둘레길이야말로 이들 자유로운 영혼의 선조들이 꿈꿨던 세상의 모습을 조금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스토리]북한산 둘레길<3>애국 선열의 성역을 걷다 4구간 솔샘길


순례길이 끝나갈 무렵 두 쌍의 부부가 쓰레기를 가득 든 비닐 봉지와 집게를 들고 올라왔다. '아하 ! 저렇게 순례길을 걸을 수도 있구나' 좀더 의미 있게 걸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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