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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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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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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커티스 그랜더슨(뉴욕 양키스)은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올해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2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쳤다. 야구장 밖에선 50개에 가까웠다. 다양한 선행활동으로 스포츠스타들의 롤 모델로 거듭났다.

노력은 메이저리그 3년차였던 2006년 처음 빛을 발휘했다. 메이저리그 홍보대사 자격으로 네덜란드, 이탈리아, 뉴질랜드, 중국 등을 방문해 야구를 전파했다. 지난 2일 찾은 한국은 그 다섯 번째 나라. 이후에도 그랜더슨은 일본을 방문하는 등 야구 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파의 초점은 메이저리그 홍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국내 선수들도 잘 찾지 않는 서울농아학교, 고아원 등에서 ‘야구 언더우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만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도움 없이 이뤄졌다.

조건형 주한미국대사관 전문위원은 “그랜더슨이 대사관이 제시한 프로그램 후보를 직접 검토하고 서울농아학교 방문을 선택했다”며 “고아원은 대사관의 도움 없이 그랜더슨과 메이저리그 측이 따로 접촉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상당해 보였다”라고 전했다. 3일로 구성된 방한 일정 가운데 개인 관광에 투자한 시간은 단 하루. 이마저도 비무장지대를 찾아 미군을 응원하고 한국의 분단사를 공부했다.


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그랜더슨은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지나온 흔적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에서 두 개의 학사를 취득했다. 경영·비즈니스와 복수 전공으로 택한 마케팅이다. 운동선수란 점을 감안하면 꽤 놀라운 성과다. 750명 이상이 활동하는 메이저리그에서 학사 학위 취득자는 38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대학에 진학해도 수료 정도에서 매듭을 짓는다.


교육에 대한 열의는 그가 벌이는 다양한 사회활동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름을 딴 자선재단 ‘그랜드 키즈 파운데이션’의 주 대상은 어린이다. 그랜더슨은 이들을 위해 2009년 미시건, 뉴욕 등지에서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제목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 꿈꾸고 행동하세요(All You Can Be: Dream It, Draw It, Become It!)’다.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관계자는 “그랜더슨은 최근 미국에서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와 함께 로베르토 클레멘테 정신을 이어받을 대표적인 현역선수로 꼽힌다”라고 전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영웅으로 불리는 클레멘테는 다양한 자선활동으로 메이저리그, 넓게는 전 세계 체육인들에게 모범이 된 선수다. 빈곤한 중앙아메리카 아이들을 위해 야구장비, 식량 등의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1972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는데, 당시 화물칸에는 대지진 피해를 입은 니카과라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물품 2톤 이상이 실려 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같은 노력을 높이 기려 이듬해 명예의 전당 유예기간 5년을 특별히 면제했다. 클레멘테는 92.69%의 득표를 얻어 헌액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의 이름을 딴 사회봉사 공로상도 제정했다.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선수에게 수여하던 ‘커미셔너 상’의 이름을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으로 바꿨다.


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그랜더슨은 올해 유력한 후보였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대신 영예를 차지한 주인공은 커쇼. 중앙아메리카의 빈곤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펼친 자선활동을 인정받아 최연소(24세) 수상자로 거듭났다. 그는 아내 엘렌과의 신혼여행 때 아프리카 잠비아에 희망의 집을 설립하는 등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나눔은 전파되기 마련. 최근 양키스와 재계약을 맺은 구로다 히로키는 2010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마에다 겐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와 동갑인 커쇼는 기량 발전을 위해 매일같이 애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남다른 배려를 보인다. 13살 많은 내가 배워야 할 정도다. 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커쇼처럼 되길 바란다.”


선수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건 그랜더슨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메이저리거 29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그는 ‘가장 친근한 선수’ 부문 1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선수들이 직접 뽑는 ‘마빈 밀러 맨 오브 더 이어(The Marvin Miller Man of the Year Award)’ 수상자로 거듭나기도 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활약을 인정받고 있는 셈.


야구 전파 때문만은 아니다. 그랜더슨은 메이저리그선수노조(MLBPA) 대표로 메이저리그 측과 노사단체협약(CBA) 룰 개정을 논의했다. 백인 스타선수들이 주를 이뤘던 협상 테이블에서 그의 목소리는 또 다른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랜더슨은 “디트로이트에서 뛴 2006년 노조위원으로 선출돼 협상에 참여했다”며 “플레이에 적합한 환경, 팬들을 위한 서비스 등을 놓고 논의한 유익한 자리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에도 노조회의에 참여했다”라고 덧붙였다.


선수들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막 양키스에 둥지를 튼 선수들에게 지역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는 노하우 등을 알려주며 상담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랜더슨의 배려에 스즈키 이치로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은 고마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훈훈한 모습은 내년 재현될 수 있다. 양키스는 지난달 30일 그랜더슨에게 걸려 있던 팀 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내년 연봉은 1500만 달러. 많은 돈을 거머쥘 자격은 충분했다. 올 시즌 타율은 2할3푼2리로 다소 낮았지만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43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랜더슨의 프로필에 표기된 체격은 6피트 1인치(186cm). 실제 키는 181cm 정도다. 그를 만난 언론 관계자들은 “상당히 거구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키가 작아 놀랐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대형아치를 많이 그려낸 비결은 무엇일까. 국내 한 스포츠 칼럼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이저리거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체격이나 전체적으로 몸의 균형이 잘 잡혀있다. 삼국지연의에 호랑이 체구, 표범 머리, 늑대 허리, 원숭이 팔뚝을 갖췄다고 서술된 화웅이 떠오른다. 어떤 운동이든 능숙하게 해낼 것이다.”


실제로 그랜더슨은 다양한 종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체육주임교사인 아버지의 영향 덕인지 어린 시절 볼링과 육상에서 수준급 기량을 뽐냈고 고교시절 야구장과 농구코트에서 남다른 면모를 발휘했다. 가장 빛난 건 포인트가드를 담당한 농구. 과감한 골밑 돌파에 차분한 경기 운영능력을 인정받아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일리노이대학교는 미국대학농구(NCAA)에서 손꼽히는 농구명문. 엘리트코스를 밟고도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이루지 못한 건 부상 탓이었다.


“엄지 부상을 심하게 당해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그 때부터 모든 시간을 야구에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부상은 전화위복이 됐다.”


힘껏 잡은 배트의 성적은 농구만큼 우수했다. 대학시절 타율은 무려 4할8푼3리. 2학년 땐 베이스볼아메리카, USA 투데이 베이스볼 위클리 등으로부터 아메리카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2년 발을 담근 메이저리그에서도 실력은 그대로 발휘됐다. 2004년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빅 리그에 입성해 올해까지 통산 1126경기에서 타율 2할6푼2리 210홈런 591타점 749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2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때리기도 했다.


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그랜더슨은 “홈런을 치기 용이한 양키스타디움에서 뛰어 운이 많이 따랐다”면서도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투수 분석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강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연습을 거듭하다보면 홈런을 치는 요령이 생긴다. 대형타구를 때리는데 필요한 힘은 전적으로 투수에게서 나온다. 타자는 그걸 효과적으로 때리면 된다. 근육을 키워야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잘못된 정보다. 나 같은 타자도 100피트는 얼마든지 때려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비결은 하나 더 있다. 긍정적인 성격이다. 그랜더슨의 올 시즌 타율은 2할3푼2리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일부 뉴욕 지역 매체들로부터 “시력이 의심된다”라는 혹평을 들었다. 사실 예상 밖의 결과는 아니었다. 양키스 이적 직전인 2009년 타율은 2할4푼9리였다. 본지 김성훈 칼럼리스트는 “양키스가 2009년 성적을 일시적 부진으로 판단하고 영입을 결정했을 것”이라며 “낮은 코스의 공, 특히 변화구를 자주 건드리다 보니 장타와 탈삼진의 증가가 동시에 이뤄졌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시절 패스트볼 공략 확률은 60%에 육박했으나 양키스 이적 이후 50% 정도로 떨어졌다. 낮은 공에 대한 타율은 소폭 오름세. 그럼에도 전체 타율이 내려간 건 변화구 공략이 좀처럼 장타로 연결되지 않은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올 시즌 43개의 홈런 가운데 변화구를 공략한 타구는 11개에 불과했다. 직구에 대한 노림수가 좋아져 대형아치를 많이 그릴 수 있었던 셈.


김성훈 칼럼리스트는 “빠른 배트스피드와 엄청난 손목 힘, 공을 지켜보는 시간이 다소 긴 타격 자세 등이 패스트볼을 장타로 탈바꿈시킨 주된 이유”라며 “양키스타디움에서 낮은 코스의 재미를 경험하며 자연스레 히팅존이 확장된 것 같다”라고 예측했다. 이와 관련해 그랜더슨은 자세한 언급을 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진을 당하는 것도 게임의 일부다. 그것까지 계산된 액수를 연봉으로 받는다고 생각한다. 개선을 위해 훈련해야겠지만 신경을 많이 기울이진 않을 거다. 내게 타율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중요한 건 타점이다. 주자를 홈으로 많이 불러들여야 하는데 나는 올해 그것을 충분히 해냈다.”


그랜더슨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당부한 두 가지


이 같은 관념은 그랜더슨의 교육 사상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야구 전파 차원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프로리그가 정착해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랜더슨은 “나처럼 덩치가 크지 않은 선수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홈런을 칠 수 있단 걸 알리고 싶었다”며 “이는 어린이들에게 분명 꿈과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미래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뛰는 국제적 무대다. 그랜더슨은 “이미 한국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훌륭한 투수로 남을 박찬호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추신수(신시내티 레즈) 등이 메이저리그를 누볐다”면서도 “그 비중은 더 늘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진지한 얼굴로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시아 선수라서 낯선 환경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야구는 한 가지 목적에 여러 구성원이 함께 하는 스포츠다. 가족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면 목표를 이뤄질 수 없다. 야구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이는 중요한 가치다. 그런 야구에 계속 관심을 가져 달라.”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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