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48)씨가 20년만에 열린 재심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20일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과거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3년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던 강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대법원이 1992년 유죄확정판결을 내린 지 20년 만이다.
이날 검은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선 강씨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분노 속에 감옥에서 보낸 3년과 그 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해왔던 것은 단 한가지,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원심 판결 당시 법원 판결문에 대해 "거대한 거짓과 모략, 허구, 비상식에 바탕을 둔 괴물처럼 보였다"며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지난 5월 간암 수술을 받고 최근까지 치료 중으로 수척한 낯빛이었다.
강씨 측 변호인은 앞서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사건을 재조명하며 검찰로부터 제출받았던 자료를 요구했다. 검찰 측은 대법원이 재심 사유를 제한적으로 인정한 만큼 재심의 심리 범위 또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31일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갖고 증거채택 여부 등 본격적인 심리를 위한 준비기간을 갖기로 했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노태우 정권 4년째인 1991년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이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뒤, 검찰이 김씨의 동료로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가 유서까지 대신 써줘 가며 분신을 종용했다는 혐의(자살방조 등)로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듬해인 199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영 문서분석실장의 필적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강씨에 대한 징역3년, 자격정지1년6월의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진실화해위는 그러나 대법원 확정판결 15년여만인 2007년 재심 권고를 결정했다. 뒤늦게 발견된 김기설씨의 필적들과 함께 과거 검·경 증거자료를 필적감정한 결과 유서의 필적은 김씨의 것으로,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991년 수사 당시 국과수 필적감정 과정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허위 증언이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강씨는 2008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앞선 유죄 확정판결이 허위 증언에 의하지도, 이후 결론을 뒤집을 증거가 새로 나오지도 않았다는 취지로 즉시 항고했다. 대법원은 꼬박 37개월만인 지난달에야 검찰 항고에 대한 기각을 결정해 비로소 재심의 길이 열렸다.
박나영 기자 bo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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