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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20년만에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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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첫 공판···징역3년 유죄 결론 뒤집히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박나영 기자]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첫 공판이 오는 20일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강씨에 대한 유죄확정 판결이 내려진 지 20년, 2008년 5월 강씨가 재심을 청구한지 꼬박 55개월여 만이다.


18일 변호인 측에 따르면 강씨는 이틀 뒤 공판이 열릴 법정에 스스로의 '누명'을 벗기 위해 예정대로 출석할 계획이다. 강씨는 지난 1994년 형기를 가득 채우고 출소했지만 법적으론 여전히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으로 낙인 찍힌 채다.

그러나 재심 법정이 열린다고 해서 강씨가 그대로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은 아니다. 법정에선 강씨에 대한 '유죄'판결의 근거가 된 필적감정과 이후 뒤늦게 발견된 새로운 필적증거의 신빙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2007년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 결정에 이은 강씨의 재심 청구에 검찰은 유죄확정판결은 허위 증언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이후 결론을 달리할 새로운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는 취지로 즉시항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지난달 검찰 항고를 기각해 재심의 길을 열었다.

대법원은 다만 재심사유가 존재한다고 인정했을 뿐, 새로 등장한 필적감정의 결과가 과거 1991년 검찰이 제출했던 감정결과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부정하기엔 부족하다고 봤다. 검찰도 이 대목에서 재심을 다퉈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검 고위 관계자는 즉시항고에 나섰던 사유가 여전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항고가 기각된 만큼 법정에서 다툴 문제"라고 말했다. 강씨 재심 사건의 공소 유지는 서울고검이 맡는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1991년 검찰 수사 당시 필적감정 공동심의란에 서명날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감정인 가운데 두 사람은 이후 "감정에 직접 참여한 바 없이 서명 날인만 했다"고, 또 한 사람은 "대부분의 감정을 김형영씨가 맡아 자신이 감정에 들인 시간은 짧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던 뒤늦게 김기설씨의 중학교 동창생이 발견한 노트 등엔 유서와 같은 필기구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20여년째 강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석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는 무죄를 확신했다. 이 변호사는 "재심이 됐기 때문에 당연히 무죄판결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변론할 것이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뒤늦게 발견된 필적증거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인 데 대해서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고 다른 증거도 전반적으로 재심의하려는 입장인 만큼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유서대필자'에서 '민주화투쟁의 산 증인'으로 바로잡자는 목적 아래 강씨의 재심을 촉구하는 운동을 펴는 한편 관련 증언을 사료화하는 작업을 맡아온 권형택 민주화운동사업회 사료관 역시 무죄를 확신했다. 권씨는 강씨 사건을 "어처구니 없는 모략"으로 평한 뒤 "당시 정권이 권력을 총동원해 언론까지 나서 한 인간을 무참히 짓밟았다"며 "강씨의 가족을 비롯한 모두가 받은 깊은 상처를 사법부가 숙고하고 반성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여년전 강씨를 법정에 세웠던 당시 서울지검 주임검사 신상규씨는 회의를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사건 이후 검사장이 돼 광주고검장까지 지낸 뒤 2009년 검찰을 떠나 모 법무법인의 구성원 변호사로 있다.


#. 노태우 정권 4년차를 맞은 1991년, 4월 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이래 이를 계기로 범국민대책회의가 명동성당에서 철수한 그해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집회·시위가 계속되며 분신 혹은 투신으로 숨진 이들만 13명.


그해 5월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해 숨진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당시25세, 이하 전민련)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김씨의 죽음을 두고 당시 서강대 총장이던 박홍 신부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은 김씨의 동료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당시27세)을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유서까지 대신 써줘 가며 분신을 종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듬해 대법원은 국과수 김형영 문서분석실장 등의 필적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강씨에 대한 징역3년, 자격정지1년6월의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전말이다.


진실화해위는 그러나 대법원 확정판결 15년여만인 2007년 재심 권고를 결정했다. 뒤늦게 발견된 김기설씨의 필적들과 함께 과거 검·경 증거자료를 필적감정한 결과 유서의 필적은 김씨의 것으로,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991년 수사 당시 국과수 필적감정 과정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허위 증언이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강씨는 2008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즉시항고했다. 대법원은 꼬박 37개월만인 지난달에야 검찰 항고에 대한 기각을 결정해 비로소 재심의 길이 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등장하는 감정서만 10개가 넘는 등 쟁점이 많고 사건이 복잡했던 탓"으로 결정이 미뤄진 배경을 해명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박나영 기자 bohena@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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