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KT&G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1년에 담배 200억 개비를 수출하는 여자. 김혜수(38) KT&G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다. 방금 전까지도 회의를 하고 왔다는 김 매니저는 160㎝ 조금 안 되는 키에 몸무게 40㎏대의 가녀린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사 제품인 담배와 KT&G 브랜드를 홍보하는 직업과는 안 어울리게 청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듣게 된 명료한 말투와 당당한 자세는 그의 커리어를 증명해보이기 충분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04년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김 매니저는 같은 해 KT&G에 입사했다. 특별히 담배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한정된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려움을 딛고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회사라는 편견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여자 선배들이 많아서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며 "국내와 해외를 두루 거치며 영업까지 확실히 하는 모범적인 여자선배도 있어 롤모델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답게 해외에서 그의 경험은 다사다난했다. 이제는 잠자리가 바뀌거나 음식이 달라도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잔다는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먹은 특별한 음식에 대해 소개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 양머리를 돼지머리 삶듯이 해서 가져왔더라고요. 그걸 그 자리에서 해체해서 하나씩 나눠 주는데, 의미가 있었어요. 남의 말을 잘 듣고 싶으면 귀를 먹고, 말을 잘 하고 싶으면 혀를 먹으라는 거였죠. 손님이 왔다고 귀한 음식을 내놓은데 거절할 수 없어 저는 귀를 먹었습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여장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번은 글로벌 매니저 어시스턴트로 있을 때 터키에서 담배꽁초 수천 개를 주웠던 적도 있다. 그는 "터키에 소비자 조사를 하러 갔는데 주는 데이터 마다 너무 달라서 종합해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며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직접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뿐이라는 판단에 선배와 함께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다"고 했다. 선배가 그래도 너는 여자니까 그만 주우라고 말했지만 선배 혼자 둘 수 없어 끝까지 같이 움직였다고 전했다.
김 매니저는 브랜드 홍보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이어들과의 신뢰를 많이 쌓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6년부터 깐느 면세점 박람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예상과는 달리 2년 간 기존 바이어들이 와서 제품은 좋은데라고 말하면서 수출을 꺼려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 매년 참가하니까 2008년부터는 점점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지고 더 많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며 "박람회 1년 나가보고 별 반응 안 좋네 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되고, 수년에 걸친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번 만날수록 바이어들과는 신뢰가 쌓이기 때문에 브랜드에 대한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3년 정도 머물면서 본격적인 현지 시장 진출에 힘쓸 계획이다. 이번 기회에 현지에서 직접 세운 전략들을 실행하면서 마케팅이나 영업 쪽 관련 부분을 더 다져 좀 더 완전한 브랜딩 전문가가 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그는 "귀국할 때 피부가 많이 타서 돌아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현주 기자 ecol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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