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지금 같은 경기력이 계속 이어질까 걱정이다."
한 때 하늘 높이 날던 '천마 군단'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11경기 무승(4무 7패)의 지독한 홈경기 부진, 투지를 잃어버린 선수단, 여기에 '뿔난 팬심'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뚜렷한 묘책도 없다.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는 나날의 연속이다.
성남 일화는 17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40라운드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3-4로 역전패했다.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모처럼 낙승을 거두는 듯 했던 것도 잠시. 수비 불안과 뒷심부족으로 내리 4골을 허용하며 주저앉았다.
유례를 찾기 힘든 치욕적인 결과. 신태용 성남 감독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 프로생활을 통틀어 이런 황당한 패배는 처음"이라며 "어떤 말을 해도 변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감독으로서 책임이 크다"라고 자책했다.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성남은 신 감독 부임 이후 매년 어김없이 굵직한 성과를 올려왔다. 2009년 K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FA컵 정상까지 등극했다.
반면 올 시즌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스플릿 그룹B(전반기 9~16위)로 떨어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성남은 40라운드 현재 13승10무17패(승점 49)로 11위에 쳐져있다. 강등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얻을 수 있는 트로피도 없다. 우승권도 강등권도 아닌 애매한 위치는 승리를 향한 선수단의 의지를 꺾는 요소다.
여기에 시즌 초부터 불거진 선수단 내 불협화음 역시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심점 역할을 해줄 버팀목이 없는 가운데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렇다보니 악순환이 거듭되는 형국이다.
신 감독은 광주전 직후 "부상자가 늘어나면서 정상적인 엔트리를 구성하기도 힘들다"라면서도 "일부 선수가 팀 분위기를 망치고 있지만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 안타깝다"라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무엇보다 프로의식에 대한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성남은 스플릿 라운드 10경기에서 단 3승을 얻는데 그쳤다. 이 가운데 1승은 잔여경기를 포기한 상주전 결과다.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월 경남전 승리(2-0) 이후 단 한 차례도 안방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점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연이은 부진에 홈팬들의 반응도 싸늘해졌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서포터스는 경기장에서 "정신차려, 성남"을 외치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코칭 스태프와 구단 내부에서도 맥 빠진 결과에 한숨짓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성남구단 관계자는 "경기 결과도 문제지만 내용면에서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홈팬들의 빗발치는 원성에 직원들의 분위기도 크게 가라앉았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 답답한 현실은 안팎으로 불거진 문제에도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 감독은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면서 "솔직히 지금 같은 경기력이 계속될까 두렵다"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향후 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성남은 1부 잔류에 사활을 건 전남, 강원과 차례로 격돌한다. 강등경쟁의 '캐스팅보트'를 쥐었다는 표현은 자칫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신 감독은 숱한 비판 여론과 어수선한 상황을 딛고 마지막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사기가 꺾인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프로 선수답게 응원해주는 팬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자존심만큼은 지켜야할 것"이라며 선전을 당부했다.
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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