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7일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린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선수권대회 이라크와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거뒀다. 한국이 정상에 오른 건 2004년 말레이시아 대회 이후 8년만이다. 반면 2000년 이란 대회 이후 12년 만에 패권을 노렸던 이라크는 후반 추가시간 1-1 동점골을 내준 뒤 승부차기에서 1-4로 져 땅을 쳤다.
1959년 압둘 라만 당시 말레이시아 수상이자 AFC 회장이 주창해 창설된 대회에서 한국은 가장 많은 12차례 우승을 거뒀다.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거둔 나라는 버마다. 1960, 70년대 아시아의 축구 강호로 이름을 떨치며 7차례 환희했다. 그 뒤는 이스라엘(6회), 이라크(5회) 등이 차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버마는 나라 이름도 미얀마로 바뀌었거니와 1970년 필리핀 대회를 끝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우승은커녕 준우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의 축구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스라엘은 모래바람에 밀려 축구는 AFC를 떠나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올림픽 운동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아닌 유럽올림픽위원회(EOC)에서 벌인다. 그 사이 이 대회를 뛸 자격은 사라졌다.
이라크는 다르다. 이란(4회), 북한(3회), 사우디아라비아(2회) 등을 제치고 한국에 이어 아시아 청소년 축구의 2인자로 자리를 잡았다. 우승 횟수뿐만이 아니다. 선수들은 이번 대회 결승에서 우승국 한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선제골을 터뜨린 무하마드 압둘라힘 카라르는 아시아 청소년 정상급 공격수로서 손색없는 기량을 보였다. 이번 대회 5골을 넣으며 득점 4위에 올랐다.
우승에 실패한 뒤 이라크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은 예사롭지 않았다. 불안정한 국내 정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축구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님 격인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과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4강과 2007년 아시안컵 우승 등을 이뤘다.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전쟁이나 다름없는 극심한 혼란을 겪는 나라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이 자국민들에게 큰 힘이 된 건 당연지사. 기쁨을 안긴 건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이주 노동자들로 이뤄진 응원단은 조국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 가고 있는 동포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조국의 청소년 선수들을 열렬히 성원했다.
아시아 정상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이라크는 내년 6월 터키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남자 월드컵에 한국, 우즈베키스탄, 호주와 함께 출전한다. 훈련 여건이 좋지 않겠지만 선수단은 충분히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까닭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의 분전을 보며 문뜩 2003년 봄 접한 외신 내용이 기억났다. 당시 이라크 축구 대표팀 아드난 하마드 코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지역 예선에 대비, 이라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표 선수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하마드 코치는 미국의 침공이 가시화되자 짐을 꾸려 독일로 가 버린 베른트 슈탕게 감독 대신 어떻게 해서라도 대표팀을 꾸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라크의 지역 예선 장소와 일정에는 혼선이 빚어졌다. 바그다드에 있는 경기장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대회 준비 과정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홈 경기를 제3지역에서 치르는 어려운 여건에서 이라크는 베트남을 3-1, 1-1로 각각 제치고 1차 예선을 통과했다. 2차 예선에서는 북한과 1승1패(4-1, 0-2)를 기록했으나 합계 성적에서 앞서 최종 예선에 올랐다. 선수단은 최종 예선 C조에서 오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물고 물리는 접전 끝에 3승3패를 기록, 2승3무1패의 오만을 골득실차로 따돌리고 자국 축구 사상 네 번째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차지했다.
1988년 서울 대회 이후 16년 만에 다시 출전한 올림픽에서 이라크는 전쟁의 와중에 있는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는 경기력을 뽐냈다. 한국이 A조에서 1승2무로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56년 만에 8강에 오를 때 이라크는 D조에서 모로코에만 1-2로 졌을 뿐 포르투갈을 4-2, 코스타리카를 2-0으로 꺾고 1위로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이라크는 8강에서 호주를 1-0으로 눌렀으나 준결승에서 한국을 3-2로 따돌리고 올라온 파라과이에 1-3으로 져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아시아 나라 가운데 1956년 멜버른 대회의 인도(4위),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의 일본(3위)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림픽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3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에 0-1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라크 축구 대표 선수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거듭났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