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뭐야? 진짜 뛰는 거야?"
FC서울과 울산 현대의 K리그 39라운드가 열린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선수 명단이 배포되자 기자석이 술렁였다. 서울 출전 명단에 오른 두 선수 때문이었다. 하대성이 선발, 고명진이 교체 명단에 포함됐다. 둘 다 전날 화성에서 열린 호주와의 A매치에 각각 45분씩 뛰었던 선수들이었다.
대표팀 소집을 나흘 정도 앞두고 가졌던 인터뷰였다. 하대성과 고명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울산전에 나서지 못하게 됐으니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적잖지 않으냐는 게 요지였다. 2년 만의 리그 정상 탈환을 위한 중요한 경기였으니 그럴법했다.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당당했다.
"규정상으로도 못 뛰는 건가? 대표팀 경기에서 어떻게 될 진 몰라도 난 울산전도 바로 뛸 생각이다. "(하대성)
"나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이 뛰게만 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뛸 거다."(고명진)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가 48시간 이내 경기에 나서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다. 다만 강제 규정은 아니다. 선수가 원한다면 출전은 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으레 할 수 있는 '립서비스'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약속이었다. 놀라운 결정에 취재진은 경기 전 최용수 서울 감독부터 찾아갔다. 배경이 궁금했다.
최 감독은 정색하며 "둘을 오늘 뛰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점심때 (하)대성이가 전화를 걸어 '자신들은 뛸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라며 출전을 강력히 희망하더라"라고 전했다.
최 감독과 하대성은 전화로 가벼운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제자들의 성화에 두 손을 들었다. 최 감독은 "리그 일정 변경으로 열흘 정도 경기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둘의 결정에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부상도 염려가 되더라"라며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서울은 전반에만 세 골을 몰아치며 울산에 3-1 낙승을 거뒀다. 하대성은 전반 45분, 고명진은 후반 45분을 뛰었다. 중원에서 이들이 중심을 잡아준 덕에 서울의 경기력은 여전히 매서웠다. 염려했던 부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승리로 서울은 승점 84점(25승9무5패)을 기록, 2위 전북 현대(승점 77·22승11무6패)와의 격차를 7점으로 벌였다. 남은 5경기에서 3승을 거두면 자력 우승 확정이다. 하대성과 고명진의 희생정신이 한 몫 한 결과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고명진과 마주쳤다.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솔직히 좀 힘들었다"라며 혀부터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고명진은 "오늘 아침 감독님께서 전화해 주셔서 대표팀 경기를 뛰었으니 울산전은 쉬라고 하셨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하)대성이형이랑 다시 통화했다"라며 "왠지 안 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형도 같은 생각이더라"라고 웃어보였다.
고명진은 "우리 입장을 정한 뒤 대성이형이 감독님께 다시 전화를 드려 출전 의사를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정말 중요한 경기였는데, 이렇게 팀에 보탬에 되며 승점 3점도 챙겨서 정말 기분 좋다"라고 전했다. 그 옆을 지나던 하대성 역시 만족스런 표정과 함께 눈인사를 보내며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서울이 2년 만에 K리그 정상을 탈환한다면, 둘의 이날 결정은 반드시 되짚어질 만한 대목이었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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