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속이 환한가, 때로 궁금하다. 지금/콩나물 대가리가 다시 수북하게 자란 저녁일까./아이들이 자라 스무살이 훨씬 넘는 동안 또 몇 년/뚜껑 한번 열린 적 없었을 것이다/무겁게 내려앉은 피아노는 저도 컴컴한 헌집이다./문턱처럼 걸린 불화와 저녁노을처럼 걸린 쓸쓸한 날들,/묻지 마라. 어두워진 것처럼 꽉 다문 입, 속은 구린내 나겠지만/흉금이란 노후에도 노후해도 썩지 않고 영롱하게 글썽이는 것.(......)
문인수의 '낡은 피아노의 봄밤' 중에서
■ 와,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우리 집에도 그런 피아노가 있으니까. 굳이 몇백만원 짜리 피아노를 산 것은, 아내의 로망에 헌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이 셋이 초등학교를 지나오는 동안, 피아노 건반 위에는 세 아이의 손이 번갈아 지나갔다. 살이가 각박해진 아내는, 먼지가 쌓여가는 피아노를 자기자신처럼 생각했다. 먼지가 쌓여가는 피아노같은 아내. "좁은 거실에 저거 필요 있을까"라고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아내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피아노가 굳이 필요의 문제냐고 묻는다. 가끔 피아노 아래에 엎드리거나 누워 나는, 아이들의 발이 닿았다 지나간 피아노의 발을 만지작거린다. 첫날밤 잡았던 아내의 작은 발처럼 섹시하고 매끄러운 그 발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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