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양승호 감독은 왜 롯데 지휘봉을 내려놓았을까.
롯데 구단은 “양 감독이 지난 24일 장병수 대표이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구단은 심사숙고 끝에 사퇴 의사를 수용키로 했다”라고 30일 밝혔다.
양 감독의 사의 표명은 이미 22일 밤 불거진 바 있다. 롯데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3-6으로 역전패,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뒤 선수단과 미팅을 가진 양 감독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 모두 수고했다. 꼭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인가 보다.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의 표명은 하루 만에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발언이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 번지자 양 감독이 돌연 태도를 바꾼 까닭이다. 그는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치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수 매체를 상대로 “사퇴 관련 기사가 나와 당황스럽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기사가 나왔다”라며 펄쩍 뛰었다. 다음날 그는 오전 내내 전화기를 꺼놓았다. 경기 직후 “책임을 지겠다”라고 밝힌 소신과 거리가 먼 말 바꾸기. 물론 이는 일부 롯데 관계자도 다르지 않았다.
양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지난 시즌 선수단을 2위로 이끌었다. 올 시즌에는 4번 타자 이대호와 에이스 장원준의 이탈에도 선수들을 4위로 이끌며 롯데의 ‘가을야구’ 행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는 포스트시즌을 치르며 “감독은 우승하지 못하면 다 똑같다. 준우승하고도 잘리는 자리”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졌다. 스포츠동아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포스트시즌에 들어가기 직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면 자진사퇴하겠다”라는 의사를 구단에 전하기도 했다.
양 감독은 2010년 말 계약 당시 구단에 선수단을 2년 이내에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킬 것이라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야구 관계자는 “구단의 숙원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양 감독이 시즌 중에도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라고 전했다. 이어 “매일 가시방석에 앉는 기분이었을 것”이라며 “자진사퇴는 충분히 예견된 사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병수 대표이사는 지난 1월 7일 시무식에서 “20년간 우승하지 못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창피하고 남사스러운 일인데 반드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의 한을 풀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재후 단장은 포스트시즌 중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승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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