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이 11월30일에서 12월5일로 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날짜를 변경한 것이다. 지난해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48년 역사의 법정 국가기념일을 바꾼 것도 납득하기 어려울 뿐더러 변경과정이 불투명해 두고두고 뒷말이 따를 것 같다.
무역의 날은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1964년 11월30일을 기념해 박정희 정부가 1973년 '수출의 날'로 제정하면서 생겨났다. 당시 수출의 날은 한국이 공업국가ㆍ해양국가ㆍ개방국가가 됐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1987년 수출ㆍ수입이 다 중요하다며 무역의 날로 이름을 바꿨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 1억달러'보다 '무역 1조달러'에 의미를 둬 날짜를 변경했다. 올해 무역의 날 기념식부터 12월5일에 한다. 교과서와 사전에 실리는 무역의 날 설명도 달라진다. 과거 수출입국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성과가 강조될 것이다. 현 정부의 업적을 남기려는 꼼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했는지 정부는 국무회의 결정 이후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았다. 무역의 날 변경을 위한 의견수렴 절차도 시늉에 그쳤다. 무역협회는 지난 3월 홈페이지를 통해 2주간 의견을 묻고 4월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딱 한 번 공청회를 열었다. 행정안전부는 6월에 기념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알리지도 않고 홈페이지에만 올렸다. 널리 알려 의견을 수렴한다는 입법예고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행위로 슬그머니 뚝딱 해치우려 한 인상이 짙다. 무역업계마저 몰랐다며 황당해할 정도다.
온 국민이 기리는 기념일은 제정이든, 변경이든 취지와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의견수렴 절차도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무역의 날 변경은 취지와 명분이 약할 뿐더러 절차도 입법예고 시늉만 한 채 어물쩍 처리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러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념일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기념일을 변경하려 들까 걱정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무역의 날 변경 과정을 소상히 공개하고 각계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많으면 무역의 날 변경을 취소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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