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21회 SBS 월-화 밤 9시 55분
지금까지 <신의>는 원나라에게 대항하는 고려왕으로 성장하는 공민왕(류덕환)을 서사의 중심으로 삼아 역사의식을 극 전반에 두었다. 그러나 이를 가져야 할 인물은 사실 은수(김희선)이다. 본래의 역사를 알고 있는 그녀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미래가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수에게 “내 곁에 남아 달라”는 최영(이민호)의 말은 연인의 프러포즈이면서도 역사를 바꿀 수 있겠냐는 대의적 의미가 될 수 있고, “살려내면 안 되는 사람을 살려낸 적 있습니까?”라는 손유(박상원)의 질책은 과거로 온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실존한 인물을 주요한 캐릭터로 설정해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한 다른 사극들과 차별된 역사의식을 보여주려던 <신의>는 결말에 다가서자 여주인공의 역사의식을 사라지게 만든다. 은수가 “내가 사는 세상이 내 세상이지”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현재와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변경될 역사에 대한 은수의 고민은 중량감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고려에서 제일 안전한 곳”인 우달치 부대에서 “신입” 은수와 “대장” 최영의 로맨틱한 역할놀이에 집중한다. 손유가 가져온 서찰에 적힌 ‘은수’라는 한글 단어를 “너 지금 거기서 뭐하고 있냐”라고 풀이한 것은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고려 말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은수의 ‘선택의 딜레마’를 은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회가 얼마 남지 않은 21회에서 은수와 최영의 감정을 되풀이하듯 확인하는 장면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역사적 대의와 사적 감정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유지되었던 ‘선택의 딜레마’를 보다 설득력 있게 다룰 방법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이 은수의 마지막 선택에 울고 웃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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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기민(TV평론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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