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지난 197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리처드 닉슨과 맞붙었던 조지 맥거번 전 상원의원이 21일(현지시간)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CNN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향년 90세다.
그는 고향인 사우스다코타주(州) 수폴스의 도허티 요양원에서 가족,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유족들이 이메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
1922년 7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맥거번 전 의원은 감리교계 학교인 다코타웨즐리언대학에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육군항공대에 입대했다.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 조종사로 유럽 전선에 참전한 그는 35차례 출격해 최고훈장인 무공십자장을 받기도 했다.
제대후 복학해 학업을 마친 뒤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미국사 박사 학위를 딴 그는 1943년 대학 커플이었던 엘레노어와 결혼했으며, 1948년부터는 당시 미국 진보당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반전운동가로 이름을 알린 것도 이 때부터다.
그는 1956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1962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1981년까지 활동했다. 당시 그는 베트남전쟁 등으로 전비가 과도하게 지출되고 있다면서 이를 삭감하려 노력했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을 끝낼 것을 촉구하는 등 대표적 진보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1972년 대선에서는 베트남전 종전과 평화협상 체결을 주장하며 공화당의 닉슨 후보와 맞붙었지만 메사추세츠와 워싱턴DC 단 두 곳에서만 승리하는 등 패배했다. 당시 득표율은 닉슨 60.7% 대 맥거번 37.5%(선거인단 520명 대 17명)으로 미국 대통령선거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보로 기록됐다.
이후 정계에서 물러난 맥거번은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며 수 권의 저서를 펴내는 한편,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중동정책위원회 대표 등을 맡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대사를 지내기도 해 2000년 8월 세계 기아문제 해결에 노력한 공로로 대통령훈장을 받았다.
2003년 부시행정부가 이라크를 전격 침공하자 적극적 대외활동과 저서를 통해 강력히 비판했으며, 2007년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이 그를 비판하자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고 국가안보와 세계적 입지를 모두 위축시켰다는 점에서 베트남 전쟁과 다를 바가 없다"며 반격하기도 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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