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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절망의 구멍이라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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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노부부가 길을 걷고 있다. 손을 꼬~옥 잡고. 늙은 아내가 업어 달라 조른다.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늙은 아내가 묻는다. "나, 생각보다 무겁지?"라고. 늙은 남편의 대답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이제 반대로 늙은 아내가 남편을 업는다. 업힌 남편이 묻는다. "나, 생각보다 가볍지?"라고. 늙은 아내의 대답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오래된 농담' 중에서)


천양희 시인의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시집에 나오는 시 중 하나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아내와 생각보다 가벼운 남편이 긴 시간,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던지는 찰진 '농담'. 2012년 지금, 황혼 이혼이 사회의 한 흐름이 된 현실에서 '오래된 농담'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오래된 농담'을 소곤소곤 건네며 시대를 걷고 있는 노부부를 보고 싶다는 우리의 소망을 담은 것인지도.

천양희 시인 "절망의 구멍이라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자" ▲천양희 시인은 "절망의 구멍이라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자"며 이 시대 여성들에게 주문했다.[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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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태풍이 한 바탕 비바람을 몰고 지나간 늦은 오후. 햇살이 조금씩 다시 세상을 비추던 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천양희 시인을 만났다.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고 말하는 시인도 나이가 들었다. 1942년생이니 고희를 맞았다.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가벼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과 부딪히고 세월을 견뎌오다 보니 마음을 비우게 되는 방법을 알게 되더라"며 고개를 돌려 카페 창가에 앉아있는 가벼운 새를 바라본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는 가만히 주문해 본다.


"시 읽을 여유가 없겠지만 보고 읽고 느끼면 좋겠어요. 시를 보면 마음이 열리고, 시를 읽고 느끼면 치유 받을 수 있어요. 그게 시인의 역할이고 시인으로서 보람된 일이죠. 내 시가 현실의 절망에서 벗어나 내일의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나로서는 그 무엇보다 행복하죠."

조선의 여성, 허난설헌은 자신을 두고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으니 여자로 태어난 것과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니……"라고 한탄했다. 시인도 여자로 태어났다. 허난설헌의 '세 가지 한'을 두고 천양희 시인은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누구의 아내로 사는 누구라도/허난설헌을 읽는 밤/너무 늦게 마르는 눈물자국이여"라며 자신과 이 시대 여성을 위로한다.


"우리나라 여성들 대단하지 않아요? 일 해야지, 애들 키워야지, 살림해야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 편견은 심해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시인은 강조한다. 시인은 "세 번이나 이혼한 마거릿 미드에게 기자들이 왜 또 이혼했느냐고 물었다/그때 그녀가 되물었다/당신들은 그것만 기억하나/내가 세 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묻지 않고."('물음' 중에서)


'왜 이혼했느냐'는 세상 사람들의 편협한 시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왜 세 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묻지 않느냐'고 '물음'을 끊임없이 세상에 던지라는 주문이다. 천양희 시인은 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시가 남의 절망을 치유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을까를. 자신이 내놓는 시가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고 느끼고 있는 지를 마음속에 새긴다.


수락산 끝자락에 위치한 시인의 집은 예전에 말들이 뛰어놀았던 '마(馬)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인의 마음속엔 말 울음소리가 남아 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습니다. 말들이 뛰어놀지는 않지만 여전히 마들이 주는 느낌과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죠. 요즈음 현실이 어렵긴 합니다. 시 읽을 여유가 있겠어요? 그래도 제 소망 중의 하나는 저녁노을이 넘어갈 때쯤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시 한편을 읽으며 오늘의 절망에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천양희 시인 "절망의 구멍이라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자" [사진=정재훈 기자]

◆"절망만큼 큰 구멍은 없고 희망만큼 큰 치유는 없다"=천양희 시인은 인터뷰가 끝나고 친필로 '절망만큼 큰 구멍은 없고 희망만큼 큰 치유는 없다'는 글을 아시아경제 독자들을 위해 써 줬다. 2012년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이 '절망의 깊고 큰 구멍'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취업의 구멍에서, 빚의 구멍에서, 범죄의 구멍에서, 가족 해체의 구멍에서. 절망의 구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깊은 구멍일 수 있다. 그 구멍에서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해 버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천양희 시인은 그 구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천양희 시인은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라는 자신의 산문집에서 "날마다 만나는 삶에서, 나 자신으로 하여금 간절히 부르게 하는 희망, 그것이 나의 내일이었다"라고 밝혔다.


'희망의 치유'를 강조한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이 출간됐고 최근작으로는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부문),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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