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조짐이 보인다. 과거 아시아 클럽을 상대로 자비를 모르던 호랑이의 면모가 다시금 엿보인다. 창단 이래 첫 아시아 정상 등극도 노려볼 만하다. 다만 풀어야 할 몇 가지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울산 현대가 19일(이하 한국시간) 문수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홈경기에서 하피냐의 결승골에 힘입어 알 힐랄(사우디 아라비아)를 1-0으로 꺾었다. 이로써 울산은 다음달 4일 새벽 열리는 2차전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점수 차는 한 골에 불과했지만, 경기력은 ‘아시아의 깡패’란 옛 별명을 떠올릴만한 했다. 2006년 감바 오사카(일본, A3챔피언십)와 알 샤밥(사우디, ACL)를 연달아 6-0으로 대파하며 붙은 별칭이었다. 사우디 명문 클럽을 시종일관 상대를 몰아붙이는 일방적 경기는 그때 못잖았다. 이근호의 엄청난 활동량과 공격적 플레이는 당시 ‘에이스’ 이천수의 데칼코마니였다. 에스티벤은 중원을 지배했고, 곽태휘와 김영광은 철벽 수비를 이끌었다. 결정력만 따라줬다면 3-0 이상의 대승도 충분히 가능했던 경기다.
바꿔 말하면 문전 마무리에서 정교함이 부족했다. 엄청난 골 세례로 상대 혼을 빼놓던 ‘깡패’로 부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실제로 울산은 이날 유리한 흐름에도 9차례 슈팅이 전부였고 유효 슈팅도 두 번에 불과했다. 오히려 전체 슈팅 수에서 알 힐랄(15개)에 뒤졌다. 문전에서의 마지막 돌파나 패스 성공률이 크게 떨어진 탓이었다.
김호곤 감독은 “운이 없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선수들이 피곤했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울산은 8월 한 달에만 FA컵 포함 7경기를 뛰었다. 9월 초 리그 휴식기가 있었지만 곽태휘, 이근호, 김신욱, 김영광 등 네 명의 주전은 A대표팀에 소집됐었다. 그야말로 녹초가 된 셈. 높은 피로도는 집중력 저하를 가져왔고, 결국 공격에서 섬세한 마무리를 방해한 요소로 작용했다. 장거리 이동까지 뒤따르는 2차전 사우디 원정에서도 같은 부담이 따아올 수 있다.
세트피스에서의 정확성 역시 아쉬웠다. 울산은 세트피스에 강점을 둔 팀이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에 곽태휘는 프리킥과 헤딩으로 모두 득점을 뽑아낼 수 있는 수비 자원이다. 강민수, 이재성 등도 ‘골 넣는 수비수’ 본능을 갖췄다. 그럼에도 이날 울산은 여러 차례 세트 피스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오히려 상대가 더 날카로웠다.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유병수에게 두 차례 결정적 헤딩을 허용했다. 이에 김 감독은 “축구에서 세트 피스는 상당히 중요하다”라며 “무엇보다 원정에선 세트피스를 골로 연결시켜야 이길 수 있다. 정확성을 보완하는데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원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당장 8강 2차전은 중동 원정으로 치러야 한다. 기후, 잔디 등 낯선 환경에 사우디 홈팬들의 일방적 응원을 견뎌내야 한다. 유병수는 “나뿐만 아니라 알 힐랄 선수 모두 그라운드 적응에 애를 먹었다. 울산이 홈이라 좀 더 강하게 나온 점도 어려웠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팀 전력은 비슷하다. 울산이 사우디에 오면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똑같이 느낄 것”이라며 “이를 잘 활용해 홈 경기를 대비하겠다”라고 밝혔다.
김 감독 역시 “축구에서 원정은 늘 어렵다”라며 “1차전에서 알 힐랄이 자신들의 색깔을 잘 못 보여준 만큼, 안방에선 상당히 거칠고 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알 힐랄은 이날 경기와 달리, 자국 리그에서 주로 공격에 무게를 둔 전술을 펼친다. 2차전에선 홈 이점을 등에 업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유병수를 비롯해 브라질 출신 웨슬리 로페스 다 실바. 사우디 대표팀 간판 아세르 알 카타니 등 빼어난 공격수들도 안방에서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일 것이다. 울산으로선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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