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아랍의 봄이 아랍의 겨울로 바뀌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통령 실장을 지냈던 앤드류 카드가 성난 이집트 군중이 카이로 소재의 미국 대사관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뉴스 보도로 접한 뒤 뒤에 한 말이다. 그는 “아랍의 봄 당시에 씨앗은 뿌려졌지만, 꽃은 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중동이 반미-반이스라엘의 구호로 온통 뒤덮혔다.
이슬람교의 예배일인 14일(금요일)을 맞아 중동지역의 반미 움직임이 격화됐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대사관들이 무슬림 시위대들의 표적이 되었고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는 곳곳에서 불타올랐다.
아랍 현지를 취재한 외신들은 아랍 사람들이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 마호메트는 신의 메신저다”를 연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들이 중동 곳곳에서 대사관으로 진출을 시도하면서 중동지역의 현지 경찰들과 미국 대사관은 대사관 방호를 위한 긴급조치들에 나섰다.
튀니지와 수단 등지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7명이 현지 경찰 등에 의해 죽었고, 예멘 이집트 등지에서도 거센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미국 대사관 등 서방 대사관 주변에서는 연기가 자욱했으며,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경찰들과 투석전은 벌였다.
튀니지에서는 폭동 진압 경찰들이 시위대로부터 미국 대사관을 지키기 위해 발포를 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2명이 죽고 29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경찰들이 밝히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원하는 몬세프 마르조우키 튀니지 대통령은 "우방국의 대사관을 공격하는 행위"라며 시위대를 비난하기도 했다.
수단에서는 3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밝혔다. 수단 시위대는 미국 대사관 이외에도 독일과 영국 대사관도 공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카이로와 레바논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는 미국 대사관을 지키는 현지 경찰들과 맞선 시위대가 "오바마와 미국, 그리고 기독교계인 콥트교도들에게 공격당했다"고 외쳤다.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폭력 강도는 낮았지만 반미시위는 벌어졌다.
아랍권 내에서 반미 시위가 격화되면서 아랍과 미국 관계 역시 악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를 동맹으로도, 적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과 이집트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랍 시위에 대해 미온적인 이집트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시절 중동에 문제가 발생하면 중동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왔던 나라가 이집트였전던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아랍의 봄 등의 영향으로 중동 각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현저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중동지역의 친미 독재 정권 등이 중동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무너지면서 지난 독재 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이슬람세력들이 집권을 한 상태라 과거처럼 중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맞서 싸워주던 미국의 친구들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아랍 지역에 반미 분위기가 이처럼 고조된 것은 아랍 사람들이 예언자로 받들고 있는 마호메트를 모욕한 동영상, '무슬림의 순진함'(Innocence of Muslims)이 제작됐는데, 제작된 곳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11일 “일부 그릇된 개인들이 무슬림들의 믿음을 폄훼하는 저질렀다”며 동영상을 제작을 규탄했지만, 성난 아랍사람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결고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히며 폭력사태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중동 문제에 있어서 유연한 태도를 유지해왔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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